꼴찌 팀을 응원한다는 것은 자조적인 한탄이랄까 어두운 낭만이랄까 패배주의가 뒤 따르는 자학의 쾌감이 있다. 이기는 팀을 응원하는 것은 누구나 다 하는 것이지만 지는 팀을 응원한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속에는 다분히 심리적인 공간이 자리하고 있고 이긴다고 하는 공통분모보다는 개별적인 반항과 내면적 개인주의가 득세할 때 가능하다. 좀 어려운 표현같지만 폼나게 지는 것도 이기는 것과 다름없다는 뜻이다. 또 상황이야 어떻든, 스스로 (자아)만족의 철학없이 지는 팀을 응원하기가 힘들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이 세상에 지는 것은 목표로 응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 그렇게 경기하는 선수나 팀도 없다. 다만 가능성이 희박한 경기를 치름에 있어서 결과를 염두에 두고 미리 주눅드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결과야 어떻든 매 순간 최선을 다 하는 선수가 있다는 것이다.
요사이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즈가 대활약을 펼쳐 베이지역 농구 팬들이 신나하고 있다. 꼭 이기기 위해서 스포츠를 하거나 관전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홈 팀이 이기면 기분 좋은 것은 사실이다. 더군다나 정규시즌뿐 아니라 최정상을 다투는 챔피온십에서 이긴다는 것은 팬들에게 간접 승리감을 만끽케하는, 엔돌핀 수치를 상승시키는 역할 또한 막강하다. 워리어즈는 불과 몇년 전만해도 NBA의 웃음거리였다.
우승을 다툰다는 그런 황당한 기대보다는 거의 매년 신인 지명권이 더 큰 관심사였다. 기왕 망친 시즌 최하위로 떨어져 (앞 순위)신인 지명권이나 따내자는 자포자기 시즌이 허다했다. 그런 워리어즈가 와신상담… 오늘이 있기까지 칼을 갈아온데는 지는데도 이골이난 그런 맷집도 한 몫했지만 뭐니뭐니해도 꼴찌 팀임에도 한결같이 (자리를 채워주고) 성원해 온 골수 팬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이야기였다.
아무튼 미국의 3대 스포츠 NBA(농구)는 흑인(아프리칸 아메리칸)들이 선수층의 80퍼센트(74.4%)를 장악하고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다른 어느 스포츠 분야보다도 흑인들의 활약이 단연 압도적인 스포츠이기도하다. 윌트 체임벌린, 카림 압둘 자바, 매직 존슨, 마이클 조단, 스테판 커리, 리브론 제임스… 미국의 전설적인, 또 그 전설을 써 가고 있는 (농구)선수들은 죄다 흑인들이다.
그런데 이 흑인 선수들 중에는 이러한 대 스타들 옆에서 2인자로 활약하면서 농구계를 이끌어 온 잊혀진 영웅들도 많다. 마이클 조단 옆의 스코티 피펜, 데니스 로드맨 같은 선수는 대스타는 아니지만 공격과 수비에서 보조역을 담당하며 한 팀의 황금기를 장식한 숨은 공로자들이기도하다. 특히 로드맨같은 선수는 코트의 악동으로 이름을 날리며 팬들에게 기쁨(?)을 선사한 또다른 스타이기도 했다. 북한의 김정은도 로드맨을 좋아하여 사적인 교분을 맺어온 바 있지만 모범적인 코트의 영웅들 못지 않게 악동의 이미지는 어딘가 원색적이고도, 묘하게 팬들을 흥분(?)시키는… 스포츠만의 묘미이기도 하여왔다.
한 때 꼴찌 팀 워리어즈를 응원하던 시절이 있었던 것은 앞서 언급한 어두운 낭만이랄까 자학적인 쾌감 때문이기도 했지만 당시 워리어즈에 코트의 악동 조 베리 캐롤이라는 선수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키 7피트(2미터 13)가 넘는 장신으로서, 센터치고는 골감각도 좋고 리바운드와 블락 샷도 좋아 대학시절(Purdue)부터 대어로 점찍혔던 선수였다. 문제는 워리어즈가 그 선수의 능력만 봤지 프로에 적응할지 어떨지… 성격이나 적성 등을 전혀 염두에 주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1980년 1순위로 골든 스테이트에 지명됐지만 당시 이 선수의 지명이 얼마나 잘못된 실수였는지 그의 별명이 Joe Barry Carroll에서 Joe Barely Care로 바뀐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캐롤의 문제점은 농구선수로서 경기에 임하는 태도가 전혀 빵점이었다는 점이었다. 락커룸에서 코치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혼자 책을 읽고 있는가하면 팀플레이가 절실한 상황에서 혼자 원맨쇼를 펼치며 스탭들의 울화통을 긁어놨다.
기자들의 질문에 마이크를 밀치고 뛰쳐나가 버리는가하면 제 아무리 혹독한 비판에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는 마치 농구선수였다기보다는 코트에서 퍼포밍 아트를 펼치는 예술가처럼 보였다. 농구보다는 장학사업 등에 열을 올리기도 하고 흑인들의 인권문제나 저술에 더 관심있어 보였다. 당연히 팀의 대들보 역할은커녕 불화의 한 복판에 서서 바가지 비난을 감당해야했지만 문제는 그의 기행이 어쩐지 꼴찌팀 워리어즈에게 어울렸다는 점이었다.
우승팀이었다면 반년도 못버텼을 그의 기행은 오히려 꼴찌팀 워리어즈의 트레드 마크처럼 보였고 드디어 1987년 서부조 1순위로 올라간 유타 재즈를 꺾고 플레이오프 4강에 오르면서 황금기를 장식하기도 했다. 그의 존재는 (워리어즈에서의…) 장렬하게 싸우고 장렬하게 패하던 그 때 그 시절이 떠오르게 한다. 또한 농구가 단순히 스팔타커스… 격투기가 아니라는 점을 우회적으로 말해주는 것 같기도 했다.
꼴찌팀에서 오랜 세월 묵묵히 버틴다는 것은 어지간한 철학… 악동이 되지 않으면 어쩌면 불가능했는지도 모르지만 승패에 연연치 않고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실력을 보여주였던그의 존재는 어쩐지 (흑인들의 리그) 농구라고하는 그 생체적이고도… 꼴찌들의 반항… 그 운명의 부피만큼 크고 거대해 보였지만 ‘술찌게미를 먹으며 함께 견뎌온’… 조강지처의 모습같은 아련한 추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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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