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궁극에는 레짐 체인지만이…

2018-06-04 (월) 옥세철 논설위원
작게 크게
후안 카를로스 1세. 인디라 간디.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조앙 피게이레두. 그리고 전두환. 이들은 무슨 공통점을 보이고 있나. 권위주의 형 체제의 독재자란 것이 그 공통점이다.

스페인의 국왕 후안 카를로스 1세는 독재자 프랑코가 키운 인물이다. 인디라 간디는 인도의 국부(國父) 네루의 딸. 피노체트는 칠레의 군사독재자. 피게이레두는 브라질 군사쿠데타의 주역. 전두환은 12.12와 5.17사태를 통해 5공 군사독재시대를 연 장본인이다.

이들은 또 다른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생전에 독재 권력을 내놓았다. 그럼으로써 그 체제가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 체제로 탈바꿈하는 데 일조를 했다는 사실이다.

“권위주의 형 독재체제는 그래도 민주체제가 될 수 있는 소망이 있다. 전체주의 형 독제체제는 그 가능성이 없다.” 레이건 대통령시절 유엔대사를 지낸 진 커크패트릭이 일찍이 한 말이다. 그 주장의 정당성을 입증시킨 사례들이 바로 이들이다.


전체주의 형 독재자가 권력을 스스로 포기, 그 체제가 민주주의로 탈바꿈한 사례는 그러면 없는 것인가. 앞으로는 어떨지 모른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없다. 소련이라는 공산 전체주의체제는 체제의 모순을 깨닫고 개혁개방에 나섰다가 붕괴됐다.

같은 공산전체주의 체제다. 그 중국은 특이한 변신에 성공했다. 공산당이 권력을 내놓지는 않았다. 대신 추구한 것은 공산당 주도의 개혁개방이다. 그 결과 경제발전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 경제발전이 민주화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30년 경제발전 시기의 마감과 함께 시진핑 1인 독재체재로 되돌아간 것이 현재의 중국이니까.

중국의 민주화 가능성은 그렇다고 치고, 그러면 무엇이 중국의 개혁개방을 가능케 했나. ‘전략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처하게 됐다’- 절대 절명의 위기에 몰렸다고 할까. 그런 상황에서 대대적 변화를 추구 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진정성 있는 변화’가 그 답이 아닐까 하는 것이 아메리칸 엔터프라이즈 인스티튜트의 댄 블루멘탈의 진단이다.

독재자 마오쩌둥의 변덕으로 중국경제는 파탄을 맞았다. 거기다가 소련과의 관계는 날로 악화되고 있다. 그 상황에서 덩샤오핑은 전략적 결단을 내렸다. 미국에 손을 내밀었다. 그 진정성을 확인, 미국은 중국에 시장을 열었고 중국은 변신에 가까운 탈바꿈에 성공한 것이다.

이야기가 길어진 것은 다름이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이 다시 열리게 됐다. 이 회담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CVID)다. CVID 없이는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도, 북한에 대한 미국의 경제지원도 있을 수 없다.

‘완전한 비핵화’에 정말이지 김정은은 진정성을 지니고 있을까. 또 과거와 다른 길을 가기위해 김정은은 전략적 결단을 내리고 있는 것일까. 이 부문에 여전히 의구심이 들어서다.

“김정은은 비핵화의 의사가 전혀 없다.”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 미 중앙정보국(CIA)이 내놓은 평가다. “한 세대 전이나 지금이나 북한은 미 제국주의가 쳐들어온다는 강박관념을 주민들에게 주입함으로써 체제유지를 해오고 있다. 그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는 것은 상상이 안 된다.” 제임스 클래퍼 전 국가정보국(DNI)국장의 증언이다.


북한 전문가 안드레에 랜코프의 진단은 더 극단적이다. ‘핵 폐기와 대기근에, 미국의 폭격, 이 양자 중 하나를 택하라면 김정은은 서슴없이 후자를 선택 한다’는 거다.

그런 김정은이 완전비핵화, 더나가 평화에 진정성을 보인다. 그건 이렇게 비유될 수 있다는 블루멘탈의 설명이다.

“비핵화에는 완전한 투명성이 요구된다. 완전한 투명성 보장은 김일성 일가가 그동안 저지른 반(反)인륜범죄- 정치범 수용소에서의 강제노역에서, 고문, 대량학살 등-도 미필적으로 들추어 낼 수 있다. 이는 동시에 김정은 체제가 주민들에게 저질러온 죄악과 선전선동을 중단한다는 것에 동의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른 말이 아니다.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투명성 보장은 전 주민을 노예화한 수령유일주의의 그동안의 통치방식 포기를 의미한다는 거다. 이를 김정은은 과연 받아들일 수가 있을까. 김정은은 그 체제의 산물이고 일부다. 답은 때문에 아무래도 ‘아니오’로 기운다.

김정은은 과거 덩샤오핑의 경우처럼 기로에서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하는 지정학적 딜레마에 직면해 있나. 그 진단 역시 불투명하다. 군사옵션을 배제하지 않은 트럼프의 ‘최대압박’(maximum pressure)정책으로 북한이 심각한 곤경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렇지만 바로 그 압박에만 못 이겨 대화에 나섰다는 주장은 점차 설득력이 약해지고 있다.

중국이 끼어들었다. 러시아도 거들고 나섰다. 그러니까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과 한 편이 돼 미국의 ‘CVID’ 요구에 ‘단계적 비핵화’로 맞서고 있는 형국으로 양상은 변하고 있어서다.

내려지는 결론은 이렇다. 큰 그림으로 보면 한반도 비핵화를 둘러싼 대결은 북한, 중국 등으로 대별되는 ‘원초적 부족주의’(tribalism) 세력과 미국 등으로 대별되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관을 추구하는 세력 간의 거대한 투쟁이다. 싱가포르 회담은 그 양대 세력의 대회전을 앞둔 잠시잠간의 숨고르기에 불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면 핵 포기를 한사코 거부할 때 그 김정은 체제에 대한 유일한 대처방안은 무엇이 될까. ‘최대압박’ 정책의 수위를 한껏 높인다. 군사옵션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그럼으로써 궁극적으로 레짐 체인지를 유도하는 것이 아닐까.

<옥세철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