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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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의 종합선물세트를 맛보며 ‘LA의 지붕’에 서다

2018-06-01 (금) 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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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t. Baldy (10064’) - West Course

등산의 종합선물세트를 맛보며 ‘LA의 지붕’에 서다

Mt. Baldy 정상에 오른 등산인들의 정경.

해발고도 10000’가 넘는 우뚝한 산으로서, 샌게브리얼산맥의 최고봉이자, 우리 남가주의 3대 거봉의 하나이고, 또 “LA의 지붕”으로도 일컬어지는 Mt. Baldy! 이 Mt. Baldy를 가장 Baldy 답게 제대로 보고 제대로 느끼게 해주는 위엄과 법도가 있는 루트, 샛길이나 샛문을 통해 잽싸게 비집고 들어가서 이루어지는 기습적인 면대나 비공식적인 방문이 아니고, 제대로 된 절차와 격식을 통해, Mt. Baldy라는 걸출한 성상을 알현하는 공식적인 예방에 비유해 볼 수 있을 루트가, 바로 이 West Course 이다.

Baldy Village 의 Visitor Center(4300’) 부근에서 시작하여, Bear Flats( 5580’ )을 경유, Mt. Baldy 정상( 10064’ )까지 편도 6.6마일의 거리에 순등반고도가 6000’ 인 짱짱한 산행으로 강인한 체력과 인내력이 필요한 힘든 코스라고 할 수 있겠다. 대개는 늦어도 아침 7시 이전에 등산을 시작해야 정오 전에 정상에 설 수 있으며, 왕복산행에 10시간 또는 그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해야 한다. 충분한 물을 준비해야 하고 트레킹폴과 헤드램프가 필요하다.

시원하고 운치있는 참나무숲 그늘과 소나무숲 그늘이 있는가 하면, 작렬하는 햇볕을 그대로 견뎌야 하는 가파른 가시밭길이 있다. 맑은 물줄기가 있는 편안한 초원이 있는가 하면, 아스라한 절벽 사이에 놓인 외나무다리 같은 가슴 떨리는 용의 등뼈구간도 있다. 이마에서 땀이 뚝뚝 떨어지는 힘든 급경사길이 있는가 하면, 그 땀을 말끔히 닦아주는 상쾌한 바람의 산책길이 있다. 가까이로는 유장한 계곡들의 푸르름이 눈을 시원케 하는가 하면, 동서남북 저만큼 멀리로 귀에 익은 이름의 수많은 산과 산줄기들이 어설픈 산꾼의 마음을 설레게도 한다.


또 빼놓을 수 없는 이 코스의 두드러진 특징 하나는, 고도에 따라 달라지는 식물군의 뚜렷한 변화이다. Incense Cedar가 드문드문 섞인 참나무숲에서 시작하여, 푸르고 무성한 고사리밭을 지나면, 빽빽하게 우거진 Manzanita 와 Whitethorn 이 길을 막는 비탈이 나온다. 다시 싱그런 Jeffrey Pine 지대를 거쳐, 수중귀족과 같은 Lodgepole Pine 들을 지나게 되며, 마지막으로는 고산증으로 시달리는 때문인지 겨우 난장이로 자라고 있는 소나무들까지 두루 감상할 수 있다.

가는 길

Freeway 210을 타고 동쪽으로 가다가, Claremont 시의 Baseline Road의 출구로 나온다. Baseline에서 좌회전하여 한 블록을 가면, Padua Ave가 되고 여기서 우회전하여 북쪽으로 1.7마일을 가면 신호등이 있는 Mt. Baldy Road가 되는데, 우측으로 이 길을 따라 7.2마일을 가면 Mt. Baldy Village에 이른다. 왼쪽으로 Bear Canyon Dr가 있는 곳을 찾으면 되는데, 오른쪽으로 있는 Mt. Baldy Lodge라는 레스토랑이 있는 곳의 앞이고, Mt. Baldy Village Church 가 있는 곳이다. 교회의 주차장이 아닌 Visitor Center인근의 도로변 적당한 곳에 안전하게 주차한다.

등산코스

구불구불한 좁은 주택가의 길인 Bear Canyon Dr 를 따라 북쪽으로 0.45마일을 올라가면 물이 졸졸 흐르는 Bear Canyon의 West Fork을 건너게 된다. 등산로입구임을 알려주는 이정판이 서 있다. 여기서 부터는 꽤 가파른 지그재그길이다. 사시사철 흐르는 물이 있어서인지 Bear Canyon을 따라 특히 Oak Tree들이 울창하여 등산길의 운치가 그만이다.

계곡의 비탈 여기저기에 드문드문 보일듯 말듯 은밀히 자리를 잡고있는 캐빈들이 있는 지역을 벗어나면, San Antonio Canyon의 하류지역과 Claremont와 Upland일 도시의 전망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봄철의 길섶에는 다채로운 종류의 야생화들이 피어난다. Prickly Phlox, Canterbury Bells, Blue Dicks, Golden Yarrow, Chaparral Yucca, Indian Paintbrush, Wild Lilac 등 제각기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등산에 나선지 대략 1시간이 경과할 무렵에는 짙은 참나무숲 그늘이 끝나며, West Fork 의 작은 물줄기가 있고, 고사리가 우거진 꽤 넓은 촉촉한 빈터에 이르게 된다. 1.8마일지점인 Bear Flats(5550’ ) 이다. 잠시 숨을 고르기에 마땅한 곳이다.


여기서부터 약 1시간 정도는 전혀 그늘이 없이 Whitethorn 과 Manzanita 일색인 말 그대로 형극의 길을 지그재그로 가파르게 올라가야 한다. 이 West Course 의 첫 시련인 셈이다. 고도가 높아 갈수록 남쪽으론 San Antonio Canyon 과 Ontario Ridge 가, 동쪽으로는 Icehouse Canyon 이 한눈에 굽어 보인다.

이윽고 소나무가 한 두 그루씩 나타나기 시작하고 곧이어 등산로 왼쪽으로 사람의 키보다 높은 두 개의 날카롭게 각이 진 바위가 야무진 경계병인 듯 쌍으로 서 있다. Twin Rocks 라고 불리는 바위( 7160’ )로 3.2마일 지점이다.

다시 여기서부터 약 1시간 정도는 Jeffrey Pine 이 위주인 소나무숲과 큰 바위들이 어우러지는, 그늘이 있지만 계속 오르막이라 숨이 차는 구간을 지나게 되는데, 왼쪽으로는 현기증이 날만큼 급경사로 내려가는 Cattle Canyon 이 굽어보이기도 한다.

길은 다시 하나의 완만한 봉우리에 오르고, 다시 세 번째 봉우리를 향해 약간 오른쪽으로 휘어지며 부드러운 오름세로 나아가는데, 이젠 바위들은 거의 없고 소나무 숲이 무성하다. 가끔씩 키가 큰 Douglas Fir들이 섞여있으나 Jeffrey Pine 이 주종인 소나무 숲의 그늘을 지나게 되므로 공기도 향긋하고 운치도 그만이다. 오른쪽 멀리로는 Ontario Ridge 의 산줄기가 선명하다.

등산을 시작한지 4시간쯤이 될 무렵에는 약 5마일지점의 세번째의 둥그스럼한 높은 봉우리에 올라서게 된다. 고도가 9000’ 내외인 곳으로 사방으로 전망이 빼어나게 좋다.

북쪽 멀리로는 West Baldy 정상에 이어 그 오른쪽으로 Baldy 정상의 모습이, 두 개의 둥그스럼한 초가집의 지붕이 겹쳐진 듯한 부드러운 곡선으로 나타나고, 바로 눈앞으로는 누군가가 “The Narrows - Razorback Saddle” 이라 표현한 용의 등뼈같은 좁다란 줄기가, 왼쪽의 Cattle Canyon 과 오른쪽의 Goode Canyon 을 가르며, 구붓하게 드리워져 있다. 볼디왕국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관문으로 외나무다리를 연상시키는데, 바람이 거칠게 불어대면 월경을 거부한다는 뜻으로, 그렇지 않으면 귀빈방문으로 환영하는 것으로 해석해 본다. 아스라한 양옆의 절벽 아래를 바라볼 여유가 없이, 다소 긴장되고 조심스런 걸음걸음으로 똑바로 앞과 발밑만을 보며 걷게 함은, 국왕을 알현하려는 빈객에 대한 의도된 길들이기는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이 좁다란 등뼈의 바로 왼쪽으로 떨어지는 비나 눈은, San Gabriel River가 되어 종국엔 Seal Beach 를 통해 태평양에 유입되어지는 여정을 그리게 되며, 바로 오른쪽으로 떨어지는 비와 눈은 마침내는Santa Ana River가 되어지고 종국엔 Huntington Beach를 통해 태평양으로 유입되어지는 더 긴 여정을 가게 되니, 이곳이 바로 글자 그대로 두 강의 “분수령” 이다.

이곳을 지나고 나면, 마치 양탄자를 깐듯 아름답고 편안한 길이 펼쳐지는 가운데, 길 양편으로는 하얗게 빛나는 도골선풍의 Lodgepole Pine 들이 접빈행렬인 듯 굽이굽이 정렬해 있다. 등산로 주변의 풍경이 설사 파리의 엘리제궁의 정원일지라도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훨씬 정결하고 우아하다.

이윽고 Mt. West Baldy 의 남쪽 기슭을 통과한다. 이 산의 높이가 10000’ 에서 단 12’가 빠지는 9988’ 임은, 뭐랄까, 주산인 Mt. Baldy의 권위에 도전치 않겠다는 자세를 확실히 보이려는 의도적인 설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예전의 조선에서는, 신하된 신분으로서 왕의 권위에 맞서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아무리 큰 집을 짓고 싶어도 100칸에서 한칸이 빠지는 99칸을 결코 넘지 않도록 삼가는 윤리가 존재했었다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말이다.

드디어 Mt. West Baldy와 Mt. Baldy 사이의 Saddle에 이르른다. 바람이 유독 드세고 차갑다. 여차하면 군왕을 지켜내는 매서운 칼바람으로 순식간에 바뀔 수 있음을 은근히 시위하는 것일까?

여기부터는 절대지존의 성역이라서인지, 근위병이랄만한 큰 나무가 없고 다만 난장이 내시인지 이니면 어린 동남동녀인지 모를 키작은 나무들이 여기저기 드문드문 서있을 뿐인데, 주봉으로 더욱 다가가면 그나마 나무라고는 단 한 그루도 없다. 북경의 자금성은, 혹시라도 황제를 시해하려는 자객이 성안에 들어오는 경우라도, 그가 은신할 수 있는 여지를 아예 없애기 위해 정전이나 침전 건물의 주위는 한포기의 풀도 용납하지 않는 텅빈 넓은 광장만이 조성되어 있는 것처럼, 이곳도 같은 맥락에서 이렇게 꾸며진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마침내, LA 의 지붕 용마루, Mt. Baldy의 정상에 선다. 이 세상의 최고점에 선 듯 사방팔방이 다 발아래에 있고, 가깝고 먼 시야에 거칠 것이 없다. “SAN ANTONIO ‘MT. BALDY’ ELEV 10064’” 라고 선명히 각인하여 땅에 부착한 동판은 벼락불이 새긴 하늘님과 땅님의 경계표지런가!

굵직한 동판 앞에 무릎을 꿇고앉아, 다섯시간 가까운 동안의 가파르면서도 길었던 등산을 무사히 잘 견디고 정상에 서서 이렇게 온 세상을 굽어볼수 있도록 허락하심에, 천지의 신령에, 그리고 Mt. Baldy 에, 고두로 경의를 올린다.

정진옥 310-259-6022

http://blog.daum.net/yosanyosooo

<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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