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르쿠츠크는 귀족·예술가 유배된 ‘시베리아의 파리’
▶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 맑고 푸른 물결 감탄 절로
호주 여행자와 함께.
우란우드는 역사적으로 아시안과 함께 생활해 와
블라디보스토크는 한국 선조들의 얼 서린 곳 많아
8월 9일. 울란우데에서 이르쿠츠크 (Irkutsk)
이르쿠츠크 시는 1661년 러시아의 코삭크부대가 들어와 세운 도시로 이르쿠츠크연방관구행정 중심도시로 인구 60만 명 이상의 도시로 러시아의 24번째 큰 도시다. 19세기 초 니코라스1세 황제에 대한 반기에 동조한 이유로 귀족 관리 예술가를 포함한 많은 명사들이 시베리아로 유배되었다. 19세기 말에 이 시의 두 사람 중 한명은 추방되어 온 사람이었다. 1825년 12월 14일 니콜라스1세의 황제즉위에 반대한 군인들과 1917년 볼셰비키혁명에 이르기까지 추방된 사람들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에 이스트 시베리아에서 문화와 교육의 센터였다. 그리고 1900년에는 이 도시를 일명 “시베리아의 파리”라고 불리기도 했다.
1879년에 대화제가 일어나 박물관을 비롯하여 5천 가구가 파괴되었다. 이곳의 유일한 유대인 회당도 파괴되었다. 그러나 도시의 대부분이 곧 복구되어 1897년에 극장이 세워지고 1898년에 중요한 기차역이 들어서고 최초의 열차가 그해 8월 16일에 도착했다. 1917년 10월 혁명 이후 일어난 내란기간동안 소위 정부군 백군과 혁명군 적군이 강열한 유혈 충돌이 있었다. 1920년에 한때 반혁명 부대의 사령관 Aleksandr Kolchak가 이곳에서 처형되었으며 그의 기념비가 2004년에 세워졌다. 1950-1959에 산업발전을 위한 거대한 땜이 건설되었다.
도시는 Yensei강 지류인 Angara 강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바이칼호에서 72킬로 (45마일)떨어져 있다. 교통의 중심지의 역할도 하고 있어 시베리아횡단고속도로, 러시아와 몽고를 연결하는 시베리아횡단열차 국제공항 등이 있다. 여러 박물관과 옛 건축양식 때문에 여행객들에게 흥미를 끈기도 하며 바이칼호에 가려면 이 도시를 거치기 때문에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 다. 한국에서 대한한공이 일주에 2번 취항하고 러시아항공도 한국을 취향하여 바이칼호를 구경하기 위한 한국인 관광객이 들어오며 대부분의 한국 관광객은 3-4박 정도의 일정이다. 한국음식점이 두 곳과 북한정부가운영하는 음식점이 하나있다.
울란우데와 이르쿠츠크 간은 460킬로의 거리로 열차로 7시간 10분의 주행거리다. 원래 오후에 떠나도록 예약되었지만 울란우데에서 많은 시간을 소비하지 않기 위해 오전으로 시간을 변경하도록 안내자 빅토리아에게 부탁했다. 이구간은 시베리아횡단 열차 구간 중 가장 짧게 잡은 구간이라 여행객들의 모습을 보고 일반객시설도 보기 위해 3등 좌석을 예약했었다. 시간을 변경하려고 하니 2층 밖에 없다고 한다. 2층은 앉을 수 없고 침대에 누어야 하는 곳이라 가격도 싸고 불편하지만 다음날 아침 9시 15분 출발 시간으로 변경했다.
아침 8시에 빅토리아가 호텔로 왔다. 택시로 역에 도착하니 여행객들 특히 배낭을 멘 대부분의 중국여행객들로 가득 찼다. 하바로브스크에서 함께 탄 오스트랄리아 여행객을 역에서 만나 스냅사진을 함께 한 장 촬영했다. 출발시간 15분전 열차가 도착하고 빅토리아는 나를 좌석까지 안내해 주고 작별인사를 했다. 열차가 떠나는데 옆 사람이 나에게 밖을 보라고 한다. 빅토리아는 밖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좋은 안내원이었다.
내가 탄 열차는 15호차 20좌석 2층이다. 3등 차는 모두가 오픈되어 있어 방속에 갖춰있던 1등과 2등보다 마음이 더 시원한 기분이다. 짧은 거리의 경우 1등과 2등을 타야 될 이유가 없는 것 같이 생각되었다. 3등의 경우 4명이 마주 보고 있는 침대좌석 아래 위를 차지하고 복도 창문가에 두 사람이 아래위로 자리를 차지하여 모두 6명이 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열차가 대부분 15개정도의 차량을 달고 다니며 그 중에 하나는 식당차다. 그리고 1개의 차량에 9개의 방이 있으며 3등의 경우 좌석 하나에 6명씩이니 차량하나에 54명이 탈수 있다는 계산이다. 우리 좌석은 20대부터 5-60대 여성으로 남자는 나 혼자다. 내 밑의 좌석에는 백인 러시아여인으로 50대 후반으로 보이며 그 앞의 여인도 비슷한 나이의 러시아 여인이다. 언어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대화는 물론 없었으나 아래 앞좌석의 여인은 몇 마디정도 할 수 있어 어렵게 몇 마디 건 낼 수 있었다. 승객들은 책을 보거나 잠을 자며 또는 전화기를 만지면서 비교적 조용히 시간을 보낸다.
옆이나 앞 사람들에게 조금도 실례되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보인다. 내 앞 좌석의 부인은 서투른 영어와 몸짓과 눈빛으로 나를 도우려고 하는 친절한 여성이었다. 다행히 내 밑 좌석의 여자가 침대로 만들어 눕지 않고 창문 쪽에 앉아 있어 양해를 구하고 아래의자 복도 쪽에 자리를 잡을 수 있어 행운이었다. 만일 승객이 침대로 사용했다면 나는 위로 올라가 힘든 여행을 했을 것이다.
울란우데를 출발한지 2시간 정도 되었을 때 누어있던 앞좌석 여인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면서 카메라를 밖으로 향하며 계속 셔터를 누르고 있다. 책을 보고 있던 나도 덩달아 창문을 향하니 넓은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바다가 아니라 거대한 바이칼호를 따라 열차가 질주하고 있었다. 호수로 들어온 지 1시간이상이 지난 오후 12.05분에도 호수는 끝나지 않는다. 끝이 보이지 않은 호수 잔잔한 물결 맑고 푸른 물 그리고 약간의 백사장 등이 경치를 더해준다. 그런데 역시 변화 많은 시베리아 기후임을 실감하게 되는 것은 12시30분 가까이가 되니 약간의 비가 내리기 시작하니 파도가 일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간 뿐 곧 해가 나기 시작하여 호수 위를 찬란히 비춘다. 호수를 완전히 빠져 나온 것은 약 2시간 30분정도가 지나서다. 울란우데와 이르쿠츠크 사이 Mysovaya에 시작하여 Slyudyanka 까지 165킬로미터 두 시간 이상을 달려야 호수가 끝나며 바이칼호 상류에서 하류까지의 약 5분의 1에 해당되는 거리다. 상류에서 하류까지의 거리는 열차시간으로 15시간의 거리다. 호수를 빠져나와 130킬로를 더 달려 오후 4시 13분에 목적지 이르쿠츠크에 도착했다.
역에서 만나기로 되어있는 앙드레 한 선교사가 보이지 않았다.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을 때도 만나기로 한 선교사가 보이지 않고 밤이라 당황했지만 시베리아에서 이미 며칠을 보냈기 때문에 다소 익숙해 저서 편안히 택시로 호텔로 향했다. 운전사에게 영어로 말을 걸어보았으나 소통이 되지 않았지만 호텔 이름을 말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호텔에 도착하니 600루불 ($10)을 요구했다. 전화기를 꺼내들고 비싸다고 영어로 적어서 러시아말로 통역이 된 것을 보여 주었으나 효과가 없었다. 5분정도의 거리니 지금까지 택시를 타본 경험으로 200루블 이하가 적정이라 생각했지만 결국 부당한 요금을 내었다. 정직한 운전수들도 있지만 시베리아 택시운전수들이 여행자들에게 부당요금을 받는 경우가 많다.
Hotel Angara 호텔데스크여직원들의 서비스는 한마디로 엉망이다. 처다 보지도 않고 여권을 요구했다. 그리고는 한참 있다가 방 열쇠인 카드를 주었다. 물음에 대한 대답은 너무나 무성의 하여 인종차별인가 생각하여 옆에 러시아인 고객에게 대하는 것을 보니 마찬가지로 냉담하다. 공산주의에서는 모두가 동등하다고 하여 모든 인종들에게 동등하게 다루어 왔다고 하지만 러시아백인들의 우월감은 속일 수 없다고 말한다.
우란우드에서 안내원 빅토리아는 부리야트 들이 사는 지역이 따로 있느냐고 물어보니 러시아인들과 어울려 산다고 했다. 러시아에는 흑인들은 없으나 역사적으로 동양인들이 살아 왔던 곳이라 동양인에 대하여 호기심을 보이거나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호텔은 바이칼 호로 흐르는 Angara 강에 가까운 시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사무실 건물 같은 큰 호텔로 외향 상으로는 좋은 호텔로 보이나 호텔방이 협소하고 날이 더운데 에어컨이 없다. 소비에트 당시 공산당 관리들이 사용하던 건물을 호텔로 개조하였다. 블라디보스토크, 하바로브스크, 울란우데에 머물었던 호텔은 방이 넓고 에어컨 시설도 갖추어져 있었으며 서비스도 비교적 좋았다. 소비에트 당시는 대부분이 아파트였으며 빈약한 시설에 좁은 공간이다.
블라디보스토크와 이곳에서 각각 3박의 일정으로 러시아여행일정 중 제일 긴 일정이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조선의 선조들의 얼이 있던 곳이라 선조들의 유적을 보기 위한 것이며 이르쿠츠크는 바이칼 호수와 시 문화시설을 구경하기 위해서다. 첫날은 오후 늦게 도착했기 때문에 시내 관광은 늦은 것 같아 짐을 풀고 호텔에 있는 여행안내 데스크로 갔다. 나타샤는 중년여인으로 친절하고 영어는 능통하지는 않아도 소통에 문제가 없다. 다음날 오전 하루 자동차로 시내관광 안내를 3,500루블(약 $60)로 예약을 하고 방으로 왔을 때 다음날 오전은 비가 오기 때문에 비가 그치는 오후 에 시작하자고 연락이 왔다. 우산을 받치고 관광하면 된다고 우겨서 아침 10시전에 만나기로 했다.
8월 10일
10시에 호텔로 찾아온 알렉산더 드미트리비치(Alexander Dmitrievich) 청년은 훤칠한 키에 미남형의 러시아 백인이다. 유창한 영어지만 영국식 발음이라 처음에는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첫 번째 방문한 곳이 호텔부근의 규모가 큰 대성당인 러시아정교 Epiphany Cathedral로 1719년에 세워졌다. Angara 강변에 위치한 이 대성전은 바로크형식의 건축양식에 외부가 화려하여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있는 곳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몇 명의 교인들이 신부의 강론을 모두 서서 듣고 있다. 정교에는 의자가 없이 모두 서서 예배를 보는 것이 특징이다. 1980년대 소비에트시대에는 빵공장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신을 부인하는 공산주의자들은 모든 성전을 박물관 공장 등 그들의 목적으로 사용하였다. 소비에트가 무너진 후 교회로 다시 복구되었다.
다음으로 간 곳이 대성전 부근에 있는 코삭크가 들어온 후 세워진 Spaskaya Church로 이 도시의 최초의 교회라고 한다. 이곳에 목재로 세워진 교회가 있었으나 1706년 벽돌과 돌로 다시 건축한 동부시베리아의 최초의 벽돌로 지워진 교회로 흰색으로 되어 있어 일명 White Church라고 한다. 아침시간에 기도하러 오는 성도들을 볼 수 있었다. 다음에 이 교회 부근에 있는 영원히 켜있는 불 Eternal Fire 로 향하였다.
주청사 건물 뒤 1941-1945년 2차 대전 영웅칭호 받은 이 지역 출신 전사자들의 거대한 기념 벽이 있다. 명칭은 “Honor of Great Victory 위대한 승리의 영예"란 이 벽 앞에는 꺼지지 않는 불 주위에 단을 만들어 꽃으로 장식했다. 이차대전 군인들의 전사자는 2천1백만에서 2천5백만으로 추산된다. 그 중 가장 전사자가 많은 국가는 소비에트연방으로 총 1천1백만의 전사자가 생겼으며 이중 러시아인 만 675만 명에 달하며 미국의 경우 40만 명의 병사가 희생되었다 (출처 Wikipedia). 이르쿠츠크 주에서 출전한 용사 21만4천 명 중 돌아온 병사는 15만 7천명이라고 안내원 알렉산더는 말했다.
비가 오기 때문에 물이 스며드는 운동화를 플라스틱 봉지로 싸고 걷자니 불편하다. 결국 발은 모두 적셨지만 아름다운 앙가라강을 따라가며 이르쿠츠크 창설자의 거대한 동상이 서 있는 곳에서 다시 자동차를 타고 관광을 계속했다. 명사들이 복역했다고 하는 소위 ‘White Swan'이란 교도소 앞을 지나가기에 차를 세우라고 했다.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고 하여 부근에 차를 세웠다. 1676년에 목조로 지은 교도소를 1811년에 벽돌로 재건축되었다.
붉은 벽돌로 되어있는 이 형무소에 1909년 스탈린이 죄인으로 복역하였으며 스탈린의 반대자였으며 레닌과 혁명을 같이 한 혁명가요 문필가인 트로츠스키 (Trotzsky)도 이곳에서 복역했다고 알렉산더는 말한다. 관광 후 인터넷으로 조사를 해보니 트로츠스키가 1900-1902년 노동조합결성을 하려는 죄로 복역하였던 것을 확인했다. 레닌과 칼 막스의 거리를 거쳐 어느 목조 건물 앞에 차를 세웠다. 조각으로 새겨진 나무로 지은 개인집 이름이 House of Europe 로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일반인이 들어갈 수가 없어 뒤 정원으로 들어가 이르쿠츠크 시와 세계 각국의 도시와 자매결연한 내용을 담은 기념물들을 보았다. 이르쿠츠크와 강원도와 자매결연 하여 한국의 전통적인 의상을 입은 부부의 동으로 된 상도 그 중에 서있다. 마지막으로 간 곳은 앙그라 강변에 세워진 시베리아철도를 구상했던 알렉산더대왕 동상이었다. 비를 맞으며 3시간동안 관광을 끝낼 즈음에 비가 그치고 해가 나왔지만 예정된 오전 관광을 마치고 호텔로 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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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진/변호사·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