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난개발과 주민들의 반격

2018-05-25 (금) 조환동 부국장·경제특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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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층 단독주택으로 구성된 주택가에 집을 구입해 살고 있는 주민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어느 날 갑자기 개발업자가 나타나 이웃 주택 몇 채를 사서 허물고 그 자리에 99개 객실과 차량 63대 주차시설, 식당 등 유흥시설을 포함하는 지하 1층, 지상 6층의 대형 건물을 신축하겠다고 한다면 반응은 어떨까.

미국에서 힘들게 벌어 내 집 마련이라는 소박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고 살고 있는 주민들로서는 그야말로 아닌 밤중에 홍두깨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신축될 호텔과 바로 이웃하게 될 한 주택 소유주는 6층 건물이 신축될 경우 건물 높이(81피트)로 자신의 일조권이 침해당하고 호텔 영업에 따른 심각한 교통체증과 소음 등으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통을 받게 되며 집값 하락으로 경제적 피해를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LA 시정부에 이의 신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이번 프로젝트를 잠정 승인했던 도시계획국(DCP)은 다시 공청회를 개최하고 신축 프로젝트의 타당성 여부를 재심키로 했다. 또 이의 신청에 대한 허가가 나올 때까지 이 프로젝트에 대한 최종 허가는 수개월 지연되게 된다.

또 이번 호텔 신축에는 주류 호텔 노조까지 가세해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나서 주목을 끌고 있다.

보통 호텔이 신축되면 호텔 직원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기 때문에 노조가 찬성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이 노조는 새 호텔이 세워지면 렌트 규제 대상인 개인주택과 다세대 주택들이 철거돼 해당 지역 중·저소득층이 타격을 받을 수 있어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노조 일자리 몇 개 창출되는 가능성을 포기하더라도 주택가에 생뚱맞게 호텔을 신축하고 서민층 노조원이 살 수 있는 주택을 없애는 난개발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인 것이다.

타지역도 아닌 바로 LA 한인타운 중심가 올림픽가에서 최근 발생한 일이다. 호텔을 신축키로 한 개발사도 한인 투자사이고 이의를 제기한 주민도 한인이다. 결국 한인끼리 얼굴을 붉히며 안 좋은 일로 부딪치게 됐다.

최근 LA 한인타운을 비롯, LA 곳곳에서 이같이 주민들이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개발이 보류되거나 중단되는 크고 작은 재개발 프로젝트들이 늘고 있다.

지난달에는 한인타운 8가와 카탈리나 코너에 주류 개발사에 의해 추진되던 269개 아파트 유닛과 1층 상가로 구성되는 27층 높이의 주상복합 빌딩 프로젝트가 ‘난개발 방지 소송’ 끝에 LA 카운티 수피리어 코트로부터 승인 취소명령이 내려지면서 건설에 제동이 걸렸다.

앞서 역시 타운 한복판인 윌셔와 옥스포드 코너의 녹지에 미주한인 최대 부동산 개발사인 제이미슨이 추진하던 37층 규모의 초대형 주상복합 프로젝트도 일부 주민의 반발 속에 LA 시의회가 녹지를 ‘역사적 랜드마크’로 지정하면서 재개발 진행이 전면 중단된 상태다.

이밖에 한인 투자그룹이 윌셔와 하버드 인근에 추진하는 7층, 객실 110개 규모의 호텔 신축 프로젝트도 호텔 보다는 거주용 주택 개발을 주장하는 일부 주민들의 반대로 LA 시의회가 재검토를 명령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주류 언론들은 이같은 주민들의 최근 움직임을 ‘난개발에 지친 주민들의 반격’이라고까지 표현한다.

지난 10여년 경제 호황에서 거의 투기 수준에 다다른 부동산 시장은 불안한 증시와 낮은 예금 금리 등으로 갈 곳 없는 엄청난 자본이 몰리고 있고 그 결과 역사상 유래가 없는 재개발이 한인타운 등 LA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제는 상업지역도 모자라 주택가의 자투리땅까지 매입해 아파트와 콘도, 심지어 호텔까지 짓겠다고 나서면서 주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사실 재개발도 법규나 조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민들의 ‘정서’이고 ‘상식’이다. 재개발도 주민 정서에 부합해야 하고 상식적이어야 한다.

이들 중단된 프로젝트의 경우 교통체증과 소음, 녹지 파괴, 중·저소득층 주택 감소, 원주민들이 재개발로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 등 하나같이 주민들의 정서를 자극하는 이슈들을 내포하고 있다.

LA 시정부가 버몬트와 7가에 3년 한시적이기는 하지만 노숙자 임시주거지 설립을 강행하는 것 역시 합법적일지 몰라도 한인 등 주민들이 강력하게 반대하는 것은 한인타운 상업 중심지이고 학교들이 밀집돼 있는 이곳에 셸터는 안 된다는 주민들의 정서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역 미관을 개선하고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지역경제에 활력소가 되는 재개발이 아닌 지역 정서에 반하고 상식을 벗어난 난개발은 안 된다는 주민들의 목소리는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조환동 부국장·경제특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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