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햇살 머금은 남태평양의 은빛물결 ···하늘을 시샘한 바다 (호주 퀸즐랜드주)

2018-05-25 (금) 글·사진(퀸즐랜드)=연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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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도 브리즈번···페리 타고 강따라 도시유람 낭만적, 인공해변 스트리츠 비치 인상 깊어

▶ 선샤인코스트···현지인들이 사랑하는 주말 휴양지, 때묻지 않은 아름다운 풍광이 매력

햇살 머금은 남태평양의 은빛물결 ···하늘을 시샘한 바다 (호주 퀸즐랜드주)

퀸즐랜드주 서부에 있는 선샤인코스트 무짐바 비치. 한적하게 트레킹을 즐기거나 서핑하기 좋다.

미세먼지 없는 파란 하늘과 덥지도 춥지도 않은 적당한 기온. 이 두 가지만 받쳐준다면 즐겁지 않은 여행은 없다. 반면 천하의 비경이 눈앞에 있다 해도 날씨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잘 왔다’는 생각을 좀처럼 하기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호주 북동부에 있는 퀸즐랜드주는 ‘웬만해서는 실패하기 힘든 여행지’다. 365일 중 300일 이상은 날씨가 화창해 호주에서도 ‘선샤인 스테이트’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적도에 가까워 아열대 기후를 보이는 이곳에서는 거칠게 쏟아지는 비를 만나더라도 걱정할 필요가 별로 없다. 잠시 카페에 들러 커피 한잔을 하고 있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쨍하게 빛나는 태양을 다시 볼 수 있다.

퀸즐랜드주 여행을 하기 위해 꼭 거치는 곳은 주도인 브리즈번이다. 한국 인천공항에서 출발하는 직항편이 있을 뿐 아니라 호주 내 도시를 연결하는 국내선이 브리즈번을 중심으로 구석구석 뻗어 있다.

브리즈번강을 따라 형성된 이 도시를 한눈에 둘러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페리를 타는 것이다. 특히 강 북쪽에 있는 시티와 남쪽인 사우스뱅크를 오가는 무료 페리인 ‘시티호퍼’는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자들을 위한 최고의 친구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하는 5시께 노스키 정류장에서 시티호퍼에 올라 옥상에 자리를 잡으니 브리즈번을 낭만적으로 물들이는 노을이 지나가고 밤을 맞은 도시가 화려하게 빛나기 시작하는 순간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이색적인 공간이자 도시의 상징과 같은 곳은 사우스뱅크에 있는 스트리츠 비치. 지난 1992년 완공된 이곳은 여름 한 철 임시로 운영하는 여느 도시의 인공해변과 차원이 다르다. 2,000㎡에 이르는 수영장의 규모와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하게 관리되는 인공백사장은 물론 방문자들을 위해 적재적소에 배치된 편의시설이 무척 인상적이다. 자연 해변과는 또 다른 완벽한 계획이 만든 인공미의 절정이랄까. 고맙게도 입장료까지 없어 도시에 머무르는 동안 시간 날 때마다 낮이고 밤이고 스트리츠 비치를 들락거렸다.

주말에는 도시가 아닌 자연을 즐기기 위해 짐을 꾸렸다. 퀸즐랜드주는 세계에서 가장 큰 해양공원인 그레이트배리어리프를 비롯해 골드코스트·선샤인코스트 등 아름다운 명소가 많기로 이름나 있다. 이 중에서 아직 국내 여행객들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고 브리즈번에서 한 시간 반 정도만 차로 달리면 도착할 수 있는 선샤인코스트 지역을 목적지로 삼았다. 선샤인코스트는 다른 지역에 비해 개발된 관광지의 느낌이 덜하면서도 풍광이 아름다워 호주인들이 주말을 보내기 위해 많이 방문하는 곳이다.

선샤인코스트에서 처음 찾은 곳은 매주 수요일·토요일 열리는 어문디마켓이었다. 1979년 시작된 어문디마켓은 주말마다 다양한 장이 서는 호주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다. 시장에서 호주인들과 어울려 해변에서 입을 가벼운 옷과 마카다미아 등 호주에서 나는 먹거리를 한 아름 사니 주말여행의 시동을 거는 기분이 들었다. 시장 옆에 있는 어문디브루어리를 찾아 갓 만들어진 신선한 수제 맥주로 목을 축이니 이보다 더 여유로울 수 없었다.

선샤인코스트에서는 달리는 곳마다 때 묻지 않은 바다가 펼쳐진다. 그야말로 취향과 기분에 맞춰 한나절을 보낼 곳을 택하기만 하면 된다. 사람들과 어울려 한낮의 에너지를 발산하고 싶다면 누사 비치처럼 최고로 유명한 해변으로 가야겠지만 파도소리를 즐기며 사색을 즐기고 싶다면 무짐바 비치나 쿨룸 비치처럼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곳을 찾는 것도 좋다.

바다를 봤으면 숲을 볼 차례. 여정의 마지막을 위해 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들을 보호하고 있는 생태보호구역 메리케인크로스파크로 향했다. 열대우림을 관통하는 탐방로로 들어가니 캥거루와 비슷하지만 몸집이 작은 동물인 왈라비가 빠르게 옆을 지나갔다. 찢어지는 듯한, 조금은 기분 나쁜 소리가 나 머리 위를 보니 과일박쥐 떼가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한국에서는 보지 못했던 낯선 동물들을 발견할 때마다 짜릿한 전율이 느껴졌다.

탐방로가 끝나는 지점에 있는 전망대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곳에서는 호주의 국립공원인 글래스하우스마운틴의 봉우리 11개를 조망할 수 있다. 드넓은 평야 위에 화산 활동이 그려놓은 봉우리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구름이 만들어내는 장관을 보니 호주의 원주민인 애버리지니들이 왜 이곳에 수많은 전설을 남겨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봉우리마다 어느덧 끝나버린 퀸즐랜드 여행에 대한 아쉬움을 잔뜩 풀어놓고 겨우 돌아가는 발걸음을 뗐다.

<글·사진(퀸즐랜드)=연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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