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길 터주는’ 중국 바이오굴기, 한국은 고사 위기

2018-05-21 (월) 한재영 기자·베이징-홍병문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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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규제일소 등 파격적 선 지원정책으로 바이오 육성

▶ 한국은 회계처리 이중잣대로 어렵게 쌓은 신뢰 허물어

‘길 터주는’ 중국 바이오굴기, 한국은 고사 위기
지난해 한국의 수출 총액은 5,739억달러였다. 한해 전보다 15.8% 늘어난 사상 최대치다. 이 같은 수출 호조의 배경에는 증가율이 무려 57.4%에 달한 반도체가 있다. 반도체를 뺀 한국의 수출 증가율은 9.9%로 별 볼일 없는 수준이다. ‘반도체 착시’를 지적하는 목소리와 함께 “반도체 없는 한국 경제는 상상하기 어렵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이런 맥락에서 산업계에서는 한국 경제의 리스크 요인인 ‘반도체 의존도’를 낮출 차세대 산업으로 바이오 산업을 주목했다. 하지만 바이오 산업이 꽃 피기도 전에 고사(枯死) 위기에 몰렸다.

설립 7년 만에 글로벌 톱 수준의 의약품 위탁생산(CMO) 업체로 우뚝 선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고의적으로 회계 부정을 저질렀다는 금융당국의 섣부른 판단 때문이다. 금융당국발 회계 논란이 척박한 환경에서 어렵게 쌓아올린 한국 바이오 산업에 대한 신뢰를 단번에 허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무엇보다 ‘중국제조 2025’와 같은 각종 국가적 지원 정책을 통해 바이오의약 산업을 집중 육성하며 거센 추격에 나선 중국과 한국의 현실이 비견된다는 지적이다.

■ 중국 ‘바이오 굴기’ 10대 산업으로 집중 육성


중국은 지난 2015년 첨단산업 육성 정책인 ‘중국제조 2025’를 발표하면서 반도체 등 정보기술(IT)뿐 아니라 바이오의료 기기 분야도 10대 핵심 사업에 포함시켰다.

바이오의료 산업 규모를 오는 2020년까지 최대 10조위안(약 1,700조원)으로 키우고 합성 신약 20개, 바이오 신약 3개를 독자 개발한다는 게 중국 정부의 목표다. 이를 위해 중국 정부는 산업 육성을 저해할 수 있는 각종 규제와 통제를 없애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전폭적인 선지원 정책으로 자국 바이오 산업 기술을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게 첫 번째 목표고 문제점은 그 이후에 차차 고치면 된다는 구상이다.

올 초에는 중국당국이 베이징시 창업 요람인 중관춘과 서부 인근 외곽에 향후 5년간 138억위안(2조2,500억원) 규모의 중관춘 인공지능(AI) 연구단지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AI 연관 산업 분야인 바이오 관련 기업도 포함시켰다.

중국 정부의 이 같은 바이오 육성 정책에 힘입어 지난 6년간 귀국한 200만명의 해외 유학파 가운데 25만명은 생명공학 분야 인재로 알려졌다.

펑리후이 중국전자상회 상무비서장은 “중국 지도부는 바이오 분야에서 일단 규제를 최소화해 시장 규모를 키운 뒤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시점에 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하겠다는 생각”이라며 “예상치 못한 큰 위험 요인이 발생할 수도 있지만 신경제 분야에서 선도국으로 앞서 가려면 과감한 정책적 지원과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도움은커녕 한국 바이오 리스크 요인된 정부

중국 정부가 자국 바이오 산업 육성에 적극 나선 데 반해 한국은 오히려 정부가 발목 잡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금융당국이 삼성 바이오로직스의 회계 처리 적절성에 대한 기존 판단을 스스로 뒤집으며 논란을 자초한 게 시발점이다. 여기에 10대 바이오 기업을 상대로 연구개발(R&D)비를 비용이 아니라 자산으로 회계 처리해 이익을 부풀린 곳을 적발하겠다며 엄포까지 놓았다.

아시아 지역 투자를 담당하는 글로벌 투자기관의 한 관계자는 “한국 정부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논란을 일으키며 결과적으로 바이오 산업 전체의 발전을 방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의 바이오 산업 키우기가 더욱 시급한 것은 기존 주력 산업이던 반도체·디스플레이 등의 IT 산업이 중국에 이미 상당 부분 따라잡혔기 때문이다. 중국이 ‘인해전술’ 식 대규모 자금 투하를 통해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단숨에 끌어올렸던 것처럼 바이오 산업 추격도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한국 산업기술평가관리원에 따르면 한국과 중국의 바이오 산업 기술 격차는 0.7년에 불과하다. 거대 내수시장을 등에 업은 중국 반도체 산업은 이미 한국과의 기술 격차를 2~3년 수준으로 좁힌 상황이다. 국가 반도체 산업 투자펀드를 만들어 2015년부터 1조위안(170조원)을 쏟아부은 덕이다.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로 끌어올리겠다는 게 중국 정부의 목표다. 스마트폰 등 중국 세트 업체들이 한국산 반도체 수입을 자국 제품으로 대체할 경우 그간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수출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산업계 관계자는 “바이오 산업을 국가적으로 지원해도 중국과의 경쟁에서 숨이 찰 형편인데 한국은 오히려 정부가 나서 산업 발전을 위축시키고 있다”고 토로했다.

<한재영 기자·베이징-홍병문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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