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허례허식 쏙 빼고, 둘 만의 추억 더한 ‘셀프웨딩’

2018-05-16 (수) 최두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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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색 있는 결혼 장소 물색하고, 다양한 각본 웨딩 촬영도 척척

▶ 하객 대접할 음식도 직접 선택, 결혼비용 60%이상 절약은 ‘덤’

허례허식 쏙 빼고, 둘 만의 추억 더한 ‘셀프웨딩’

셀프웨딩으로 결혼한 동갑내기 부부 황병일ㆍ김유리(32)씨 부부가 경북 영덕 메타세콰이어 숲 길에서 삼각대를 놓고 촬영한 결혼기념 사진.

허례허식 쏙 빼고, 둘 만의 추억 더한 ‘셀프웨딩’

최근 방영한 ‘효리네 민박 시즌2’에서 이효리 이상순 부부는 셀프웨딩을 준비하는 민박객을 위해 제주도 집을 웨딩촬영 장소로 기꺼이 내줬다.

이 집은 이효리 이상순 부부가 2013년 실제 결혼식을 올린 의미 있는 공간이다. 이들에게 결혼 당시 입었던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도 빌려줬다. 이효리 이상순은 이 옷을 입고 매년 결혼기념일마다 같은 장소에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민박객의 셀프웨딩 촬영은 민박집 종업원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한 대세남 박보검이 맡아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샀다.

‘셀프ㆍ스몰웨딩’은 이제 젊은이들 사이에 낯설지 않은 용어다. 사랑하는 이와 셀프웨딩으로 백년가약을 맺는 이들은 생애 단 한 번의 축복을 자신들만의 온전한 노력과 추억으로 채운다. 동시에 비용도 아낄 수 있는 ‘일거양득’이다 보니 ‘대만족’이다. 물론 부케, 나비넥타이 등 사소한 소품까지 직접 준비하는 다리품은 들여야 하지만 이 조차도 소중한 추억이 된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동갑내기 부부 황병일ㆍ김유리(31)씨는 1년 전 청첩장부터 신혼여행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둘이 계획해 결혼했다.

부부는 앞서 결혼한 친구들을 보면서 셀프웨딩을 결심했다. 김씨는 “하객과 신랑신부가 기념촬영을 하는데 다음 커플이 입장하고, 좁은 주차장에 서둘러 주차하느라 진이 다 빠지는 걸 보고 이건 정말 아니다 싶었다”고 말했다.

부부의 우선 셀프웨딩 과제는 예식장 잡기였다. 마침 시청이나 구청 등에서 저렴한 가격에 1시간 이상 예식을 치르는 공간을 제공하는 걸 보고 이거다 싶어 대 여섯 곳을 살펴본 뒤 대구시교육연수원으로 결정했다. 하루 종일 이용하는데도 대관료는 단돈 10만원이었다.

예식장소를 정한 부부는 4계절 풍경을 모두 담은 웨딩앨범을 만들기 위해 예식일을 1년 뒤로 잡았다. 여름을 시작으로 결혼식이 있는 이듬해 봄까지 신랑의 고향인 경북 울진 바닷가와 영덕, 경남 창녕 우포늪, 진주성, 제주도까지 곳곳을 누비며 둘만의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잘 찍는 친동생이 촬영작가로 자원 봉사했다. 때론 삼각대가 사진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김씨는 “운 좋게 전문작가의 이벤트에 당첨돼 연예인 화보 못지않은 사진을 얻기도 했다”며 “촬영 내내 입은 드레스는 나뭇가지에 걸려 찢어져도 아깝지 않은 3만 원짜리였다”고 말했다.

예식은 주례 없이 다양한 공연으로 진행됐다. 양가의 사정을 고려한 퍼포먼스에 이어 칵테일쇼와 비보이 댄스 등 공연까지 더해져 예식 시간은 1시간이 넘었지만 하객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김씨는 예단을 아예 준비하지 않았다. 예물도 두 사람 손에 낄 반지가 전부였다. 신혼여행은 4박6일 간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로 다녀왔다. 두 사람이 쓴 비용은 100만원도 되지 않았다. 오랜 시간 인터넷으로 검색하며 꼼꼼하게 준비한 덕분이었다.

황씨는 “결혼식 하는데 1년 걸렸다고 하면 혀를 내두르겠지만 모든 과정이 너무 설레고 재미있어서 힘들긴커녕 다 기억에 남는다”며 “함께 준비하며 서로를 더 잘 알게 됐고 결혼을 소중한 시간으로 여길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최해원(42)ㆍ유서룡(41)씨 부부는 올 2월 3일 집 근처 교회 예배당에서 결혼했다. 이들에게 이날은 30분 만에 후딱 끝나는 정형화된 결혼식이 아닌 1시간 가까이 하객들의 축복을 받으며 백년가약을 맺는 인생 최고의 날이었다. 1인당 3만~4만원에 달하는 웨딩홀과 달리 교회 식당에서 1인당 1만5,000원이라는 저렴한 돈으로 갈비탕과 떡, 과일 등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푸짐한 음식을 하객들에게 대접했다.

웨딩 사진은 친구 동생이 운영하는 사진 스튜디오 한 켠에서 친구들과 함께 촬영했다. 웨딩드레스는 전문 웨딩샵에서 10만원 정도에 빌렸다. 드레스 풍으로 개조한 의상 몇 벌을 더 준비했다. 덕분에 부부는 적은 비용으로 독립된 공간에서 친구들과 함께 자유로운 웨딩촬영을 즐기면서 전문스튜디오 못지않은 웨딩앨범을 만들 수 있었다.

부부가 이렇게 치른 결혼 비용은 교회 예배당 대관료와 하객 식대비 800만원, 웨딩촬영 50만원 등 단돈 850만원이었다. 비용을 아낀 것은 물론, 부부 간 정서적 교감까지 할 수 있어 만족감은 더 컸다. 최씨는 “우리가 원하고, 하고 싶은 것 위주로 결혼식을 할 수 있어 좋았다. 서로의 취향을 알게 되면서 상대에 대한 이해와 배려도 더 깊어졌다”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다음 달 결혼하는 정동현(34)ㆍ류가연(33)씨도 셀프웨딩으로 부부의 연을 맺는다. 가연씨는 인터넷으로 7만~8만원짜리 드레스 2벌을 구입하고, 촬영 날짜를 사람이 적은 평일(4월 5일)로 잡았다. 메이크업은 출장을 불러 15만원을 지출했고, 촬영은 남동생에게 맡겼다. 회사원인 동현씨는 휴가까지 냈다. 그렇게 친구들 3명과 경북 경주 대릉원과 보문단지에서 5시간 동안 촬영을 했다. 당일 비 예보가 있어 걱정했지만 다행히 날씨가 나쁘지 않았다. 의상은 드레스 2벌과 일반복 1벌, 대릉원 인근에서 시간당 2만원에 빌린 한복 등 총 5벌의 옷을 입었다. 류씨는 “야외에서 옷을 갈아입는 등 준비를 해야 해 어려웠지만 남편, 친구들과 재미있게 촬영했고, 결과도 대만족이다”라고 환하게 웃었다.

이처럼 셀프웨딩은 이제 하나의 새로운 결혼 문화로 인기를 끌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온라인으로 운영하는 작은결혼정보센터의 상담 건수는 첫 해인 2015년 31건에서 2016년 188건, 2017년 163건으로 큰 폭 늘었다. 센터에 온라인으로 작은결혼식을 하겠다고 서명한 사람도 9만9,871명에 이른다.

자치단체와 각급 기관들은 셀프웨딩을 선택한 예비부부들을 위해 예식 공간을 무료 또는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고 있다. 서울에선 청와대 사랑채와 서울 시민청을 비롯해 월드컵공원, 양재시민의숲, 남산공원 호현당 등에서 셀프웨딩을 할 수 있다.

예비부부들은 이를 통해 비용은 크게 아끼면서 예식을 치를 수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2015년부터 개방한 월드컵공원에서 야외결혼을 한 10쌍의 평균 예식 비용은 식장 대관료와 피로연 비용(150명 기준), 꽃 등 예식장 세팅비, 헤어메이크업 비용 등을 합해 총 650만원이었다. 이는 일반 결혼식의 평균 비용인 2,000여만원와 비교할 때 60% 이상 절감한 것이라는 게 서울시의 설명이다.

셀프웨딩이 새로운 결혼 방식으로 자리잡는 것은 결혼에 대한 전통적 가치관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전우영 충남대 교수(사회심리학 전공)는 “과거 결혼의 의미에 가족과 가족의 만남이라는 비중이 컸다면 지금은 두 사람의 만남의 비중이 점점 더 커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예전에는 결혼 방식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일종의 모범답안이 있어 당사자가 가난하다고 해도 결혼을 소홀히 치를 수 없었지만, 이제 당사자들의 추구하는 다양한 행복의 방식에 따라 결혼을 하는 게 가능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셀프웨딩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현실적인 여건이 따라주지 않아 포기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정동현ㆍ류가연씨 커플은 셀프웨딩 촬영까지는 무난히 성공했지만, 예식 공간을 정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류씨는 “야외에서 6월에 결혼을 해야 해 덥지 않을까, 비가 오지 않을까 등 신경 써야 할 게 많아 실내 결혼식장을 찾았지만 웨딩홀은 대부분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의 줄임말)를 패키지로 묶어 대관만 따로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예식만 따로 해도 시간이 극히 제한적이어서 송정해수욕장 인근 레스토랑 등 웨딩홀 이외의 장소도 알아봤지만 적절한 가격에 분위기와 식사의 질까지 맞추는 건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류씨는 “고민을 계속하다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주차와 위치, 식사 등을 고려해 대형 뷔페 체인점을 끼고 있는 웨딩홀을 대관했다”고 말했다.

<최두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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