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싱가포르회담이 성공하면…

2018-05-14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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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세계는 다극(multipolar)화의 시대인가. 아니면 여전히 초강대국에 의한 단극(unipolar)화의 시대인가. 질문이 꽤 어렵다.

상식적인 답은 미국이라는 세계 유일의 수퍼 파워가 지배하던 시대는 끝났다는 것. 동시에 제기되고 있는 주장은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다극체제가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정확한 진단에 맞는 주장일까. 아마도 중국, 러시아 측의 ‘희망적 생각’일 것이라는 게 싱크 탱크 지오폴리티컬 퓨처가 내린 결론이다. 2018년 시점의 세계는 여전히 초강대국 미국이 세계질서의 중심에 있는 단극체제의 세계라는 지적이다.


왜 새삼스런 다극화니, 단극체제니 하는 질문인가. 한 때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와 나란히 ‘악의 축’으로 불렸다 그 북한과 이란, 이 두 ‘불량체제’(rogue regime) 발(發) 핵 위기는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까. 그 답의 윤곽을 제시하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다.

“‘힘을 통한 평화’- 바로 이것이 그가 던진 메시지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북정상회담 일정과 장소를 확정해 발표했다. 동시에 이란과의 핵 협정 파기를 선언했다. 그러자 워싱턴 일각에서 나온 반응이다.

“오바마는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라는 미국의 위치를 부끄럽게 여겼다. 반면 트럼프는 미국의 파워를 자산으로 활용해 원하는 것을 얻었다. 그 ‘힘에 의한 평화’ 드라이브는 먼저 북한에 통했다. 그리고 그 독트린을 이란에 적용하고 있다.” 보스턴 헤럴드의 지적이다.

“오바마와 달리 트럼프는 막강한 미국의 파워를 휘두르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한국문제 전문가 이던 엡스타인의 말이다. 이란에 대해서도 같은 정책을 구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이 김정은을 움직이게 했나. 미 항모 3개 전단이 동시에 전개됐다. 막강한 힘의 과시에 중국도 북한제재 대열에 참여했다. 그 최대압박 정책을 이란에도 적용하고 있다. 결과는 그러면. 이란의 값 싼 석유와 미국의 강력한 세컨더리 보이콧, 양 자 중에서 세컨더리 보이콧 회피 쪽으로 결국 유럽 국가들은 기울 것이다.”

지오폴리티컬 퓨처의 분석이다. 무엇을 말하나. 북 핵 위기에서, 이란 사태, 중국과의 무역 분쟁에 이르기까지 현안의 국제문제의 궁극적 해결사는 미국이라는 사실이다. 다른 말이 아니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국제질서의 중심에 있는 것이다.

여기서 미-북 정상회담으로 이야기를 좁혀보자.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회담에서 ‘북한 핵무기 완전 폐기’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것인가. 일정과 장소가 확정됐다. 회담내용에 대한 조율도 끝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쎄’라는 전망이 여전히 우세하다.


거짓말 장이다. 속임수로 일관해왔다. 스스로 제의한 협약도 지키지 않는다. 그런 북한이니 믿을 수 없다. 그러니 회담실패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압도적이다.

다른 전망도 제시된다. 다소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트럼프와 김정은의 싱가포르회담은 미국과 소련의 냉전종식을 가져온 1986년의 레이건과 고르바초프의 레이캬비크 정상회담에 비유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거다. 그러니까 회담성공에 대비한 실행계획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을 근거로 한 전망인가. 세계는 여전히 초강대국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라는 냉정한 현실에 우선 근거한 것이다.

중국도 아니다. 문재인정부도 아니다. 미 본토 타격능력을 갖춘 핵무장 북한은 결코 용인할 수 없다. 이 같은 레드라인 설정과 함께 최대의 압력을 가했다. 군사조치도 불사하면서. 그 미국의 힘이 결국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불러낸 것이다.

이란 핵 협정을 파기한 것도 그렇다. 핵 폐기 압력을 가하는 데 있어 이란과 북한에 각기 다른 기준을 제시할 수 없다. 때문에 북한을 상대로 한 플레이북을 이란에도 적용하고 나선 것이다. 그만큼 워싱턴의 입장은 단호한 것이다.

‘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있다’- 미국의 압력도 압력이지만 바로 이 같은 김정은의 탈(脫)중국 자주행보의 움직임도 회담성공 기대의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분석으로 평양이 보이고 있는 이 같은 자세와 관련해 한반도에서의 힘의 균형은 벌써부터 미국과 동맹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기울고 있다는 낙관론을 펴고 있다.

왜 김정은은 한 달 여 남짓한 기간에 두 차례나 시진핑을 만났나. ‘베이징의 조언을 구하기위해서다’- 이는 어디까지나 중국의 해석이다. 사실에 있어서는 시진핑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서라는 게 워싱턴포스트의 진단이다. 다른 말로 하면 중국이 몹시 초조해 하고 있다는 거다.

“아직까지는 말 그대로 전망일 뿐이다. 그렇지만 정상회담이 성공으로 끝나고 북한이 핵 폐기에 이어 미국, 일본, 한국과 관계정상화를 했을 때 어떤 결과가 올까.” 내셔널 인터레스트의 해리 카지아니스가 던진 질문이다.

중국의 북한에 대한 레버리지는 모두 사라진다. 이와 동시에 미국은 중국의 도전에만 전념할 수 있게 돼 한반도, 더 나가 타이완문제, 동중국해, 남중국해 대치 상황에서도 압도적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아시아 정세는 미국에 유리한 쪽으로 크게 기울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트럼프-김정은 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면 그 최대 패자(loser)는 중국이 된다는 이야기다. 과연 그런 상황이 올까. 아니면….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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