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요 속의 외침

2018-04-21 (토) 실비아 김 현대오토에버 비즈니스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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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온 가족이 함께 즐겨보던 <가족오락관>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두 팀의 대결구도로 여러 게임을 진행한 후 최종 점수를 계산해 승리를 결정하는 예능 프로였는데,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게임은 ‘고요 속의 외침’ 이다. 헤드폰을 쓰고 시끄러운 음악을 듣는 상태에서 옆 사람이 말한 단어들이나 문장을 전달하는 방식인데 출연자 4~5명을 거치면서 단어들이 엉뚱하게 바뀌고 출연자들이 수많은 해프닝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며 많이 웃고는 했다. 그런데 어린 나를 박장대소하게 했던 그 기억을 떠올리게 된 계기가 좀 씁쓸하다.

매년 대학입시 결과 발표 시즌이면 의외의 아이가 아이비리그 등 명문대학에 합격하는 경우도 있고 실력 대비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도 있기 마련이고, 그런 사례들이 공유되면서 ‘카더라’ 통신이 기승을 부린다. 올해 역시, 아이들의 대학입시 결과와 관련된 이야기가 부모들 사이에서 한 다리 두 다리 건너 전해지면서 수많은 카더라 통신이 만들어졌다.

그 중 하나가 지인 가족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사연을 직접 들어 내용을 알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사실과 전혀 다르게 막장 드라마처럼 변질된 그 이야기가 꽤나 충격적이었다. ‘고요 속의 외침’ 게임 중 몇몇 출연자들이 재미있는 연출을 위해 일부러 이상하게 말을 바꿔 전달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내가 들은 그 이야기도 누군가 고의적으로 내용을 바꾸고 부정적인 이야기를 추가하지 않았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


한인부모들 중 자녀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테니 대학입시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우리 아이랑 같이 입시를 치른 다른 아이들의 결과가 궁금한 건 물론이고, “일류대학에 합격한 아이들은 뭘 잘해서 그렇게 잘된 걸까” “당연히 합격할 줄 알았던 안전한 학교에서도 떨어진 애들은 뭐가 부족했던 걸까”라며 후에 입시를 치르게 될 본인 자녀들을 위해 이집 저집 결과를 궁금해 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 아이에게 혹은 그 아이의 부모에게 직접 들은 것도 아닌 이야기를, 그러니까 사실 확인도 안 된 소문에 자기 추측을 사실인 냥 덧붙여 전달하는 사람들로 인해 “실력도 없는 애가 일류대학에 합격했다 싶었더니 극빈가정 특혜를 받았다더라” “안전한 학교에도 떨어진 애는 알고 보니 그 부모가 이상해서 학교에서 추천서를 좋지 않게 써줬다더라” 식의 소설이 만들어지는 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말을 옮기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말 한마디가 그 이야기의 당사자에게는 비수처럼 꽂혀 큰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알고는 있는지.

여섯 다리만 건너면 전 세계 사람들이 연결된다고 할 정도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작다. 하물며 미국 내 한인사회는, 거기에 또래 아이들을 키우는 가정만으로 국한하면 한 다리만 건너도 서로 아는 사이일 정도로 더 작을 것이다. 그런 작은 세상에서 악의를 가지고 남에 관한 이야기를 재생산 해냈을 때 그 악의가 상대방에게 전혀 전달되지 않을 확률은 희박하다는 점도 인지했으면 좋겠다.

비록 그 상대방이 직접 와서 항의하거나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하지 않는다 해서 상대방이 모르고 있거나 주변 사람들이 당신의 악의를 눈치 채지 못한 것이 아니다. 예능 프로에서 억지로 웃기려는 출연자에게 반감이 생기듯, 그저 사람들은 당신에게 반감을 느끼고 점차 거리를 두는 것뿐이다.

악의나 고의가 없었다고 해서 남의 이야기를 왜곡하는 것이 정당화 될 수는 없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나 역시 그동안 내가 그런 실수를 한 적은 없나 되돌아보게 된다. 말로 들은 이야기는 자기 뇌 속에서 다르게 처리되어 처음 들었던 내용과 다르게 기억될 수 있음을, 문자로 전해 받은 이야기는 활자로만 보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감정이 이입되어 곡해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시기’와 ‘질투’의 마음은 긍정적으로 사용되었을 때에만 자신의 발전을 견인해주는 힘이 된다. 그러니 남의 행복을 깎아 내리고 남의 불행을 고소해하는 대신 기쁜 일은 진심으로 함께 축복해주고 안 좋은 일은 진심으로 같이 걱정해 주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말이다.

<실비아 김 현대오토에버 비즈니스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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