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개인 사유물로 법인으로 운영하는 천연 관광지

2018-03-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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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가 방인숙의 가을 여행기②루레이 동굴

개인 사유물로 법인으로 운영하는 천연 관광지

종유석들

약 100만~ 400만 년 전 형성...세계서 7번째로 커
동굴 안은 연중 화씨 54도 ...300쌍 넘게 동굴 결혼식 거행
거인의 방은 각양각색 종유석이 상들리에 처럼 매달려 있어
동굴광장은 한국참전용사전사 등 전쟁영웅 명단 판도

버스는 쉐난도(Shenandoah)계곡에 숨어있다는 루레이 동굴(Luray Caverns)로 향했다.
드디어 주민이 5000명 정도라는 작은 타운 루레이에 있는 동굴에 도착했다. 20명쯤이 그룹으로 가이드를 따라 1시간가량 구경한단다.

동굴로 내려가니 애초 발견자였다는 앤드류 캠벨(Andrew Campbell)과 일행이 밧줄을 타고 내려왔던 첫 착지 지점을 별도 표시해놓았다. 1838년, 근처에 살던 함석공 캠벨이, 뒷산 정상 부근의 뾰족한 석회암 주변이 꺼져있고 땅속에선 찬바람이 나와 동굴의 존재를 직감했단다. 캠벨과 조카와 사진사 등 5명이 땅을 파고 내려가는 탐색과정에서 드디어 동굴존재가 드러났고. 이렇듯 대단한 결과는 우연히 작은 의문점에서 비롯됨을 증명해준다.


마침 동굴 땅의 임자가 빚으로 땅을 내놓자 캠벨은 동굴존재를 함구하고 법원경매로 샀단다. 그 이후 여러 번의 전매 끝에 현재는 Graves가족에게 소유권이 있다. 국가나 주(州)가 아닌 개인 사유물로 ‘루레이 동굴 법인’이 운영하는데, 무려 2천만 불의 가치란다. 미국의 자연 랜드 마크로 지정돼 연간 50만 명 이상이 찾는 이 동굴의 역사이자 현주소다.

세계에서 7번째로 큰 이 천연동굴의 형성기를 약 100만 년 전에서 400만 년 전까지로 추측한단다. 탄산칼슘성분의 퇴적암인 석회암특징은 산성을 띈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면 석회가 물에 녹는점이다.

녹은 석회성분이 포함된 물이 어딘가에서 방울방울 떨어지면 고드름 같은 종유석(Stalactite)이 되고, 밑에 떨어져 석회가 쌓여 자라면 석순(Stalagmite)이 된다. 종유석과 석순이 자라다가 맞닿으면 기둥 같은 석주(Stone Pillar)가 되는 거고. 또 석회암은 산성인 물속에 오래 잠겨 있다가 석회가 많은 부분부터 녹기 시작해 묘한 모양으로 깎여나가게 된단다. 동굴 안이 연중 화씨 54도(섭씨 12도)고, 70명 내지 80명을 수용할 넓은 곳도 있어 300쌍 넘게 동굴결혼식을 거행했단다. 특이한 결혼식만큼 아름답고 특별하게 잘들 살려나?

통로가변에 설치된 쇠 난간도 잡을 필요 없이 걷기가 용이하다. 크리스털이나 고드름처럼 보이지만 돌인 종유석들이 셀 수도 없이 천장에 달려서 어안이 벙벙하다. 바닥엔 얼음처럼 매끄러워 보이는 석순들이 삐죽 솟거나 둥글게 올라왔다.

동굴 안엔 연못이 두 곳인데 깊은 곳은 8피트(2,5m)나 된단다. 꿈의 호수(Dream Lake)라는 곳은 거울궁전이라고 불리 울만도 하다. 물이 하도 맑아 처음엔 각양각색의 종유석들이 투영된 줄 모르고 위아래가 하나로 연결된 묘한 형상으로 보았다. 완전 초현실적인 광경에 순간적으로 낯선 행성에 들어온 듯 기이하다.

석주(石柱)들이 하도 웅장해 지금 내가 고대 그리스의 신전 터에 와있나 했다. 제일 예쁜 원주(圓柱)가 황후의 기둥(Empress Column)이라고 하는 거겠다. 그런 류의 석주가 두 개 나란히 수직으로 서있는 건 이중원주(Double Column)라고도 한단다. 올려다보는 찰라, 코끼리 다리가 퍼뜩 연상돼 짓밟히면 끝장이겠다는 거대한 존재감에 저절로 오싹해진다.

북미 원주민이나 아프리카인들이 종족 수호신이자 가족의 상징으로 숭배하던 신주인 토템을 빗댄 토템기둥(Totem Poles)도 있다. 그 가운데 유별나게 수평으로 수백 년 된 고사목처럼 벌렁 누워 버린 석주가 있다. 가엾게도 언젠가 덮친 지진여파로 떨어졌단다. 성장스톱이 돼버린 세월의 무게를 가늠하니 아깝고 참담하고 허무하다.


거인의 방(Giant’s Hall)이란 데는 천장이 무척 높아 고개를 뒤로 젖혀야했다. 각양각색의 종유석들이 크리스틀 샹들리에마냥 달려서 겨울왕국(Frozen)이란 만화영화의 얼음궁전으로 착시된다. 얼음분수(Frozen Fountain)는 석순이 넓적한 반석에 분수의 물줄기가 동작정지상태로 얼어붙었다.

6피트 깊이라는 소원의 샘(Wishing Well)이 있다. 소원 없는 사람은 없을 테니 누구나 다 혹할 이름이다. 처음엔 물빛이 완전 블루 토파즈 보석인양 파래서 신비하다 못해 영험하게 다가왔다.

예상대로 바닥엔 소원의 동전들이 두툼하게 깔렸다. 상단엔 연도별로 모아진 동전의 통계를 칠판에 써놓듯 명시했다. 숫자가 하도 많아 한참 셌다. 하찮은 동전이라도 십시일반의 막강한 위력증명이다. 1954년부터 2014년까지의 총액이1017,868,32,00이니 상상초월의 금액이 아닌가. 2016년 한 해엔 약14만 불이나 됐다나.

물론 모아진 금액을 많이 기부한다지만 아쉬움도 크다. 물빛이 파란 건 동전의 구리성분으로 인해서다. 바닥만 변질돼 물만 파래보이면 괜찮은데 물위의 바위까지 파랗거나 군데군데 초록 멍이 들었다. 차라리 샘을 동굴 벽에다 붙이지 말고 통행로에 설치하는 게 나았을 텐데. 아니면 동전 투매함을 옆에 따로 두면 샘이 동굴오염원이 되진 않을 텐데. 아예 소원의 못을 동굴 밖이나 건물 밖에다 만들었으면 제일 좋았을 텐데...

아! 드디어 30여 년 동안 유일하게 내 머릿속에 각인돼있던 달걀프라이 석순이 나타났다. 계란프라이 방식의 등급대로 (Sunny-Side-Up Eggs)이란 명찰이 있다. 큰 백합조개를 벌려 펼쳐놓은 듯 쌍으로 나란히 있다. 하나는 노른자가 약간 터져 좀 납작해진 상태고, 하나는 노른자가 봉긋이 원형으로 탱글 솟아 계란프라이 찍은 사진처럼 리얼하다. 진주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조개안의 큰 진주가 박힌 걸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맨 마지막 동굴광장이라는 넓은 공간에 다다랐다. 거대한 종유석 파이프오르간(The Great Stalactite Pipe Organ)인데 장난감 풍금 같은 오르간이 설치됐다. 기계가 건반을 누르면 연결된 전선에 달린 작은 전자식 망치가 종유석을 쳐서 음악이 연주되는 원리다. 진짜로 종유석벽엔 작은 망치가 와이어에 달려있다. 비슷한 음계의 종유석을 찾아 정확한 음이 나도록 갈은 다음 망치를 달은 거란다. 국방성 전자과학자 리랜드 스프링클(Leland W Sprinkle)이 36년간의 연구 끝에 3년의 제작과정을 거쳐 1954년에 완성했다나.

개인 사유물로 법인으로 운영하는 천연 관광지

동굴안에 설치한 오르간



모든 종유석과 석순의 성장은 현재진행형이다. 약1.6mm 자라는데 자그마치 120년이 걸린단다. 그것도 한번 사람 손을 타면 생성에 방해를 받기에 인간이 손대는 건 절대 금물인데 말이다. 내가 얼음이나 수정고드름으로 착시될 때마다 그 질감이 무척 궁금하지만 참았던 이유다. 그런데 손닿을 부위의 종유석들은 끝이 뭉툭 잘려 훼손된 것들이 왜 제법 많은지. 더해서 왜 종유석을 다듬어 음악 만들 의도를 했는지. 정말로 ‘그것이 알고 싶다’.

무심코 눈을 돌렸다가 숙연해졌다. 스탠드생화꽃다발이 세워져있고 버지니아 페이지 카운티 출신의 1차, 2차 대전 참전용사들의 전사자들 명단 판이 있다. 더 짠하게 한국참전용사전사자들 이름도 있다. 한국인 후손들은 이들에게 말로 표현할 수없는, 절대 갚을 수 없는, 크나큰 빚과 은혜를 지고 있다. 이렇게 내가 유적하게 동굴구경을 할 수 있는 것도 다 그들의 값진 희생 덕이다 싶어 뭉클해진다. 잠시 묵념하고 나오는 발걸음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았던 이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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