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진달래’

2018-03-20 (화) 윤제림(19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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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한석란, ‘Inner Flares 8’

진달래는 우두커니 한 자리에서 피지 않는다
나 어려서, 양평 용문산 진달래가
여주군 점동면 강마을까지 쫓아오면서 피는 것을
본 일이 있다

차멀미 때문에 평생 버스 한 번 못 타보고
딸네 집까지 걸어서 다녀오시던 외할머니
쉬는 자리마다
따라오며 피는 꽃을 보았다

오는 길에도 꽃자리마다 쉬면서 보았는데,
진달래는 한 자리에서 멀거니 지지 않고
외할머니 치마꼬리 붙잡고 외갓집 뒷산까지 와
하루 밤을 더 자고, 그제서야 지는 것이었다.


윤제림(1960- ) ‘진달래’ 전문

할머니 치마꼬리에 묻어 먼 길을 따라와 지는 분홍빛 진달래꽃. 그 꽃은 저 홀로 화사한 꽃도 아니고 징징거리는 슬픔의 꽃도 아니다. 이 꽃은 멀거니 지지 않는 진짜 꽃이다. 제 안에 깃든 것이 사랑이든, 열정이든, 그리움이든, 집착이든 그것을 꽃으로 살다 가는 꽃다운 꽃이다. 꽃 피는 시절이니 꽃 지는 시절이기도 하겠다. 멀미 때문에 차도 못 타시지만 걸어서라도 가시고 싶은 데는 꼭 다니시던 할머니와 외갓집 뒷산까지 온 꽃은 너무 닮았다. 결코 멀거니 살지 않던 꽃과 할머니, 함께 피고 지던 그 든든한 봄이 그립다. 임혜신<시인>

<윤제림(19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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