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용주를 위한 생활임금 설명서

2018-03-14 (수) 류정일 경제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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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맥도널드는 린우드 지역 한 매장 앞의 황금빛 ‘M’자 아치를 뒤집어 ‘W’로 선보였다가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

회사 측의 의도는 맥도널드 10곳 중 6곳의 사업주가 여성인 점을 축하하기 위함이었지만 비꼬는 쪽에서는 “쇼는 그만 하고 직원들에게 생활임금부터 줘라”고 비난했다.

개인적으로 맥도널드의 W자 시도는 나쁘지 않았다고 본다. 63년 맥도널드 역사상 이니셜을 뒤집은 건 처음이다. 값싼 홍보라고 폄훼하는 이들도 마케팅 전문가는 아닌 듯하다.


이런 식으로 보면 최근 영국에서 KFC가 했던 광고도 기겁할 내용이다. 닭이 제대로 공급되지 못해 일주일간 매장들이 문을 닫았고 주요 일간지에 사과 광고를 게재하며 치킨을 담는 박스에 ‘KFC’가 아닌 ‘FCK’라고 바꿔 적었는데 고객들의 불만을 콕 집어냈다고 호평을 받았다.

맥도널드와 관련한 논란은 뒤로 하고 생각해볼 부분은 ‘생활임금’(Living Wage) 아닌가 싶다. 실질적인 생활이 될 정도로 필요한 임금을 뜻하는 생활임금에는 식료품비, 육아비, 의료비, 주택과 교통비, 세금 그리고 전체의 10% 선인 기타 비용이 포함된다.

MIT가 만든 웹사이트(livingwage.mit.edu)에는 전국의 지역별 생활임금이 나온다. 간략하게 살펴보면 LA 카운티의 4인 가족 생활임금은 맞벌이 부부인 경우 시간당 18.95달러, 외벌이는 29.65달러다.

스웨덴 가구 업체 아이키아(Ikea)가 지난 2015년 생활임금을 기준으로 직원들의 급여를 약 17% 올려준 점에 대해 지난 1월 작고한 잉그바르 캄프라드 설립자는 당시 직원의 존엄성과 기업의 생산성을 동시에 높였다고 찬사를 받았다.

여기에 경제정책연구소(EPI)가 최근 전국 611개 대도시의 4인 가족 기준 생활비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LA는 저축 및 노후 자금을 제외하고 필요한 월 소득이 7,700달러로 나타났다.

법이 정한 최저임금보다는 높지만 그저 천박하기만 한 자본주의가 아니라면 곱씹어 볼 부분들이 있는 가이드라인들이다.

무엇보다 인공지능(AI)가 주식거래를 하고, 로봇이 햄버거 패티를 굽는 시대지만 여전히 존중받아야 할 인간으로서 직원들의 최소한의 자존심을 일으켜 세워줄 수 있는 결단이기도 하다.

주거 환경이 좋지 않다는 직원의 말을 들은 고용주가 웨스트 LA로 이사하라고 하는 건, 일견 빵이 없으면 케익을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MIT의 생활임금 계산 웹사이트에는 근로자도 그렇지만 고용주들이 반드시 방문해 보라는 뜻이다.

이쯤 되니 맥도널드의 W사인이 여성(women)의 이니셜이 아니라 임금(wage)의 앞글자처럼 보인다.

<류정일 경제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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