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의도의 ‘하얀 코끼리’

2018-02-28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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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계올림픽이 무사히 끝났다. 개막 전 여러 우려와 논란들이 있었지만 알차고 성공적인 대회였다는 평가가 대세다. 사실 평창올림픽 개최가 결정됐을 때 부정적 기류가 강했던 것이 사실이다. 동계스포츠의 저변이 넓지 않고 인프라도 부실한 데, 강원도의 작은 산골마을이 과연 지구촌 최대 스포츠 이벤트를 잘 치러낼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 시선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기우였다.

평창 성공의 요인은 ‘저비용 고효율’에서 찾아 볼 수 있을 것 같다. 평창올림픽이 결정된 후 관계자들의 머리를 짓누른 것은 어떻데 재원을 조달할 것이며 올림픽 이후 시설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평창올림픽에는 13조원이 넘는 돈이 들어갔다.

하지만 대부분은 고속도로와 KTX 등 사회간접자본 비용이다. 개폐회식이 열린 메인 스테디엄은 비용을 최소화해 지었으며 경기장들은 기존 시설들을 증개축하는 방식으로 준비했다. 그 결과 2014년 러시아 소치동계올림픽에 들어간 60조원보다 훨씬 적은 돈으로 올림픽을 치를 수 있었다. 찬사를 받았던 개폐회식 비용 또한 총 668억원으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9분의 1 수준이었다.


저비용 고효율 올림픽의 원조를 꼽자면 1994년 열린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대회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릴레함메르 인구는 2만7,000으로 평창보다도 적다. 릴레함메르는 자연과의 조화를 고려해 시설을 만들고 올림픽 이후 그것들을 완전히 재활용한다는 기본 방침 아래 올림픽을 준비했다. 그 결과 흑자올림픽이 된 것은 물론 올림픽은 마을의 경제적 자산이 됐다.

노르웨이는 저비용 고효율의 진정한 모델이 될 만한 나라이다. 노르웨이는 평창올림픽에서 모두 39개의 메달을 획득하며 동계올림픽 사상 단일국가로는 최다메달을 가져가는 대기록을 만들었다. 노르웨이의 총 인구는 530만으로 디트로이트 정도에 불과하다. 메달 한 개당 인구수를 계산한다면 다른 나라들은 절대 범접할 수 없는 동계올림픽의 지존이다.

노르웨이가 강한 이유는 한가지이다. 즐기는 스포츠를 한다는 것이다. 겨울스포츠는 노르웨이사람들에게 일상생활이다. 또 아이들이 13세가 될 때까지는 대회를 열어도 등수를 매기지 않는다. 모두가 일등이다. 압박감에 짓눌리지 않고 즐길 줄 아는 게 동계스포츠 절대강자 노르웨이의 비결이다.

최근 북유럽 스타일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노르웨이는 바로 이런 북유럽 모델의 전형이 될 수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 즐기는 스포츠, 아이들의 개성과 적성을 중시하는 교육 시스템은 치열한 경쟁사회와 비교할 때 경제적 사회적 비용이 훨씬 덜 들어간다. 한국의 사교육비용을 떠올려보라.

정치 또한 생활화 돼 있다. 유권자들은 평소 정당정치와 각종 토론에 적극 참여해 정치인들을 평가하고 자신들의 생각을 적극 개진한다. 정치가 생활화되다 보니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입신양명과 출세의 수단으로 여기지 않는다. 물론 여기에는 뛰어난 복지와 높은 생활수준이 한 몫 한다.

이런 의식은 의원들의 세비에서도 확인된다. 스웨덴과 노르웨이 등 북유럽국가 의원들의 세비는 자국민 1인당 GDP의 1.5배 수준이다. 반면 한국 국회의원들의 경우는 5배를 훌쩍 넘는다. 절대 액수로 비교해도 한국이 두 배 이상 받는다. 그런데도 국회가 돈값을 하고 있다는 징후는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다. 결론은 간단하다. 한국정치는 비효율 정치의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건물은 고비용 저효율의 상징인 ‘하얀 코끼리’가 된지 오래다.

평창올림픽 관계자들은 릴레함메르를 직접 방문하는 등 노르웨이 모델 벤치마킹에 힘을 쏟았다. 그리고 여기서 얻은 지혜를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에 적용했다. 이제는 올림픽의 저비용 고효율 모델을 정치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서서히 고민해야 할 때다. 국민들의 일상적인 참여를 높이고 정치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한 시스템과 정치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 그리고 개헌 논의는 이런 문제를 공론화하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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