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겨울이 간다’

2018-02-27 (화) 육근상(1960- )
작게 크게
‘겨울이 간다’

김경애,‘Garden #1’

小寒은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이어서 온종일 눈발 날린다

길 메우고
날아온 새들은 헤집어 보기도 하고
소나무 가지가 한참 짊어지고 있다 툭툭 털어내기도 하는 것이어서

한나절 꼼짝 않고 있다 그래도 누가 오시지 않을까 가시지는 않을까 방한모 쓰고,
목장갑 끼고, 대문 앞에서 저 아래 신작로까지 넉가래나 밀고 나가는 것이다


겨울이 간다

항상 발이 저리신 아버지 윗도리 지퍼 열 듯
엄니 찬송가 몇 소절로 물길 가르듯
저 눈발은 平和라 읊고 싶은 것이다

겨울 깊어 온종일 눈발이 날리고 산골마을에 길이란 길은 온통 막혔나보다. 그 눈발 짐짓 멈추자 누군가 눈길을 쓴다. 방한모 쓰고 목장갑 끼고 신작로까지 넉가래를 죽죽 민다. 행여 가시거나 오실지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서다. 춥다 힘들다 탓하지 않는다. 새들 더불어 나뭇가지에 하얗게 휘어지며 겨울은 겨울의 길을 가고 사람은 사람의 길을 간다. 집에 돌아와 웃옷 벗으시는 아버지인 듯, 안방에서 노래하시는 어머니인 듯, 착하고 평화로운 사람의 마을에 겨울이 지나 간다. 눈발 소리 윙윙 내며 마음껏 지나간다. 한 몇 달 실컷 춥겠다. 임혜신<시인>

<육근상(1960- )>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