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도니스’

2018-02-22 (목) Gerald Stern (19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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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니스’

박영구,‘Reminiscence-clouds’

나는 용서했다네, 어디서 왔는지도
늘 화를 내던 아버지와 사랑 많던 엄마에 대해서도 끝내
말해주지 않았던 그를 나는 놓아 주었다네, 모든 핑계와 이유로부터,
수십 년 전, 브로드웨이 103가에 있는 식당 안쪽
김 오르는 물에 접시와 후라이팬을 닦으며 음악을
이야기 하던 그, 걷어 올린 소매. 손, 그리고 팔, 그의 꿈은
줄리어드였지, 맨하탄 북부, 작은 연습실을 가진 돈 많은 여인이
오후 내내, 그가 조그만 피아노를 치는 것을 들어주는 것,
크고 로맨틱한 제스처, 흐트러진 머리카락, 멋진 손과 손가락.
맨하탄 남부, 리틀 이태리에 살던 그는 전형적인 폴란드인
고등학교를 중퇴한 그, 콜롬비아 대학원생인 나
유럽으로 일 년 떠났다가 돌아와 그를 찾았을 때, 매니저는 죽음을
말해주었지. 아무도 모르는 그의 죽음. 이후 오래 그를 생각하곤 했다네
지금도 생각나네, 암스테르담 식당으로 그와 함께 여럿이
저녁을 먹으러 갔던 일, 그때도 그는 꿈을 이야기 했었지
며칠 전에 작곡한 음악을 손으로 지휘하면서
수많은 밤을 깨우던 돌이킬 수 없는 상실, 그러나 몇 년 전
이름마저 잃어버렸다네. 이제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 또한 아도니스였으니, 애정하는 셜리여,
부디 헌시를 써주오.

Gerald Stern (1925- ) ‘아도니스’
임혜신 옮김

아프로디테의 질투로 태어나 아프로디테의 연인이 되었던, 아도니스는 잘 생긴 청년 사냥꾼이었다. 셜리는 아도니스라는 제목으로 키이츠의 짧은 생애에 바치는 55장의 헌시를 썼다. 그리고 제럴드 스턴은 가난한 범죄의 소굴에 살다 떠나간 무명의 청년 음악가에게 이 시를 바친다. 신화와 시와 자본의 도시를 배경으로, 여기 어느 콘서트홀에서 들을 수 없는 아주 아름다운 음악이 흐른다. 관객도 티켓도 조명도 필요 없는 이 음악의 무대는 생이라는 무한한 열망과 상실이다.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자신의 영혼을 기울일 줄 아는 이들의 귀에만 들려오는 그 노래. 오래된 폐허처럼 슬프고 화려하고 매혹적이다. 임혜신<시인>

<Gerald Stern (19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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