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트럼프가 틀렸다 : 48만 9,000명 vs. 7명

2018-02-21 (수) 김상목 정책사회팀장 부국장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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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침체로 실업률이 치솟던 지난 2011년은 노스캐롤라이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주민 48만 9,000여명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실업률은 12%에 달했다. 하지만, 농업부문에서만 극심한 인력난이 나타났다. 그러자 ‘노스캐롤라이나농장주협회’(NCGA)는 구인광고를 내고 노동자 6,700명 모집에 나섰다. 노동자 구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실업 주민 48만 9,000명 중 지원자는 단 268명. NCGA는 즉시 이들 중 245명의 채용을 결정했다. 하지만, 일이 시작된 첫날, 나타난 주민은 163명. 한 달이 지나자 다시 절반이 나가 떨어졌다. 결국, 수확기가 끝날 때까지 버틴 노스캐롤라이나의 미국인 주민은 단 7명에 불과했다. 반면, 나머지 일자리를 채웠던 멕시코 노동자들은 90% 이상이 끝까지 일자리를 지켰다.

‘글로벌 개발센터’(CGD)가 2013년 한 보고서에서 밝힌 내용이다. 6,700개의 일자리가 있었지만 실업자 48만 9,000여명 중 취업자는 7명에 불과했던 이 사례는 ‘이민자가 미국인 일자리를 앗아 간다’는 주장의 맹점을 보여준다. CGD는 미국 경제사정이 아무리 나빠져도 미국인들로 농장일자리를 채우지는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료인력 상황도 마찬가지다. 간호사의 15%가 이민자들이지만, 2022년엔 150만명의 간호사가 더 부족할 것이란 예상이다. 의사는 더 심하다. 의사 4명 중 1명이 외국 의대를 나온 이민자들이어서 이들 없는 의료는 상상조차 힘들다. IT 업계 역시 이민자 없이는 생존이 힘들다. 이민자가 미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이민정책은 여전히 역주행 중이다. 지난달 연방정부는 아이티를 ‘농업부문 임시노동 비자’(H-2A)국가에서 제외했다. 트럼프의 ‘거지소굴 국가’(shithole countries)발언이 나온 직후였다. 당시 트럼프는 아이티·엘살바도르와 아프리카 국가를 지칭하며 “왜 거지소굴 국가에서 이민을 받아야 하느냐? 노르웨이 같은 나라에서 받아야 한다”고 말해 세계를 경악시켰다. ‘아이티’는 ‘거지소굴 국가들’중 하나였다.

그렇다면 노르웨이와 아이티 중 정작 미국에 도움이 되는 국가는 어느 곳일까? 한 보고서는 대지진 이후 H-2A국가가 된 아이티는 이민자는 1인당 미국 경제에 월 4,000달러의 이득을 가져다준다고 평가했다. 또, 이들이 본국에 보내는 송금은 아이티 경제를 떠받친다. 미국과 아이티 두 나라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노르웨이는 어떤가?

노르웨이인들은 트럼프 발언에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복지와 소득이 더 높고,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로 꼽히는 우리가 왜?” 성인인구의 25%가 이민을 떠나야했던 힘든 시절이 노르웨이도 있었다.

하지만 100여년도 지난 1870년대의 일. 1980년 6만 3,000명이던 노르웨이인의 미국행은 2016년 2만 3,000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H-2A 리스트에서 아이티는 사라졌고, 노르웨이는 남아있다. 이민정책은 ‘이민송출국’, ‘이민수용국’, 그리고 ‘이민자’ 이들 3자 모두가 이기는 정책이어야 한다. 경제적 국익관점에서도 트럼프는 방향이 틀렸다.

<김상목 정책사회팀장 부국장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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