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회적 재난’ 과 ‘개인 책임’

2018-02-21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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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7월 기록적인 폭염이 시카고를 덮쳤다. 살인적 무더위 속에 사람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했으며 폭염이 지나간 자리에는 700명이 넘는 희생자들이 남았다.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 어떻게 이런 참사가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인지, 학자들이 원인규명을 위한 조사에 착수했다. 이들의 조사를 통해 밝혀진 것은 질병으로 누워있거나 가난해서 에어컨이 없는 사람들은 폭염으로 사망할 위험이 3배 이상 높다는 사실이었다. 또 사망자 대부분은 사회적으로 고립돼 있었다.

당국은 이런 사실들을 바탕으로 지역 공동체들과 함께 폭염 중앙통제센터 조직, 비상연락망 구성, 에어컨이 시원하게 작동하는 쿨링센터 개설, 그리고 쿨링센터까지의 무료셔틀 운행 등 대비책을 마련했다. 재난의 이유를 분석하고 대비책을 세운 덕분에 4년 후 폭염이 다시 시카고를 엄습했을 때는 희생자를 100명 선으로 줄일 수 있었다.

질병과 관련해 사회적 원인을 찾고 그 원인과 부조리를 시정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학문이 ‘사회역학’이다. 한국의 대표적 사회역학자인 고려대 의대 김승섭 교수는 재난에 대한 공동체의 성공적 대응사례의 하나로 시카고 폭염을 꼽는다. “폭염재난을 자연재해로, 우연히 발생한 사고로, 또 개인적 원인으로 돌리지 않고 사회적 원인을 찾아서 그에 기반을 둔 대응전략을 마련한 행정기관과 시민들이 거둔 성과”라는 것이다.


어떤 참사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개인적 문제로 돌리기는 쉽다. 가난하기 때문에, 아니면 게을러서, 혹은 운이 없어서 당한 일이라고 치부해 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참사와 질병 등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들은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공동체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

14일 플로리다 한 고등학교에서 또 다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해 17명의 무고한 생명이 희생됐다. 그러나 반복되는 참극에도 정치권은 총기규제에 여전히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범인에게 정신적 문제가 있었다”며 개인의 정신건강 문제로 돌리려는 모습이다.

사회적 질병의 책임을 개인 문제로 전가하려는 이런 궤변은 가증스럽다. 특히 국가지도자의 발언으로서는 최악이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총기를 구입하고 휴대할 수 있는 여건은 방치한 채 개인의 정신건강만 들먹거리는 행태는 무책임의 극치다. 바이러스가 득실거리는데도 방역 책임은 외면한 채, “개인의 면역력 문제”라며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끈질긴 생명력을 보이는 총기 옹호론 자체가 이런 궤변과 억지주장에 뿌리를 두고 있다. 총기 옹호론의 가장 보편적인 근거는 총기소지가 범죄의 억지와 제압에 대단히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반대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문제를 오래 연구해 온 하버드대 공중보건대학 데이빗 헤메웨이 교수는 범죄자들과 피해자들이 맞닥뜨렸던, 즉 이론적으로는 피해자가 자기방어를 할 수 있었던 범죄 1만,4000여건을 분석했다. 이 범죄들 가운데 42%의 경우에서 피해자들은 호신가스를 뿌리거나 소리를 지르고, 몸싸움을 하고 도망가는 등 모종의 행동을 취했다, 하지만 피해자가 총기를 사용한 경우는 전체의 1%도 되지 않았다, 자기방어 수단으로서 총기는 거의 무용지물이었다.

범죄억지와 제압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총기가 대량살상에 사용되고, 우발적 사고와 자살 등 범죄와 사고의 촉매제가 되고 있다. 주택침입 범죄자들이 훔쳐가는 총기 또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헤메웨이 교수의 결론은 “총기소지는 자신을 지켜주지 못할 뿐 아니라 막대한 공중보건 비용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끊이지 않는 총기참사는 미국의 사회적 재난이요 국가적 질병이다. 그런 만큼 해결 또한 사회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통과 문화, 그리고 자기방어를 이유로 지금처럼 개인의 무장을 무분별하게 허용한다면 야만국가들과 별 다를 바 없다.

공화당과 트럼프는 시카고 폭염재난에서 배우길 바란다. 총기참사를 개인의 정신질환 문제로 치환시켜 논점을 흐리려는 기만적인 태도를 버리지 않는 한 비극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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