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분노와 증오를 넘어서

2018-02-17 (토) 김순진 / 교육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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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이 바뀌고 새 정부가 들어서는 시기에는, 자연히 정치 관련 뉴스가 자주 화제에 오른다. 정치와 종교 얘기는 화제로 삼지 말라는 처세용 권고가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 그 권고를 지키기 어려울 때가 있다. 이쪽에서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상대방이 먼저 말을 걸어왔을 때에는 전혀 대꾸를 안 할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에 처했을 때 나는 이런 점은 괜찮은데 저런 점은 마음에 안 든다는 식으로 얼버무리고 만다. 해답이 없는 논쟁일 뿐 아니라 사람들은 한번 생각이 머리 속에 깊이 박혀있으면, 그 생각이 좀처럼 변치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치가 화제가 될 때에는 보통 다음 두가지중 하나이다. 첫째는 이전 정부들의 비리와 부정부패이고, 둘째는 새 정부의 정책의 방향이다. 마침 함께 자리한 사람들의 정치 성향이 비슷할 때는 같은 편이라는 안도감으로 별 마찰없이 대화가 계속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좌중의 어느 한사람이 얼른 화제를 다른 데로 옮기는 기술을 발휘해서 분위기를 전환시키기도 한다.


현재 한국은 남과 북으로 분단된 것도 모자라 남쪽 한국에서 다시 보수, 진보로 갈라져서 죽기 살기로 싸우고 있다. 조선시대 당파싸움과 크게 다르지 않은 양상이다. 그러나 보수, 진보 양측에서 인정해야 할 것이 있다. 해방이후 70년 동안 10여명의 대통령이 집권했는데, 그 동안 극빈국에서 국민소득 3만달러를 바라보는 상위 중진국으로 도약했다는 사실이다.

인격, 역량, 업적 면에서 차이는 있겠지만, 그래도 각 대통령의 정책의 일부는 성공했기 때문에 오늘의 한국이 있게 되지 않았을까?

1960년대 시골에서 우리집에 일하러 왔던 15살쯤 된 아이가 “아줌마, 나는요, 이팝 (흰쌀밥) 실컷 먹는 것이 소원이에요” 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쌀의 생산량이 늘고 쌀밥을 덜먹어서 쌀이 남아돈다는 세상이 되었다.

또 당시에는 미국에 가는 것이 달나라에 가는 것쯤으로 선망의 대상이었다. 이제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한국인들이 아니 가는 곳이 없을 정도의 여행 붐이 일어날 만큼 중산층이 대거 확대되었다는 소식이다.

미국의 정치권 역시 이전투구의 싸움판이다. 세계 최대의 선진 민주주의 국가라는 전통과 자부심에 먹칠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정도로 지금 민주, 공화 양당 사이에 대립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상하원은 물론이고 대법원과 하급 법원에까지 같은 당 출신으로 채우려는 노력이 지속되고 있으니, 행정, 입법, 사법의 3권 분립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이 깨질까 걱정이다.

그런데 정치권의 싸움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일반 국민들 사이에 증가하고 있는 분노와 증오이다. 미국이 두 편으로 갈라져서 서로를 공격하고, 일부 극단주의자들은 상대방을 반역자라고 부를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해 졌다. 미국이 언제부터 상식과 이성을 잃은 후진사회로 타락했나 하는 실망을 금할 수없다.

그러나 너무 낙심할 필요는 없을듯하다. 혼란과 안정의 사이클이 반복되는 가운데 문명의 큰 틀은 계속 진보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낙관적인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현재 사회를 휩쓸고 있는 분노와 증오의 탁류가 빠져나가고, 이성과 상식이 지배하는 건전한 사회로 회복하리라는 희망을 가져도 될 것 같다.

<김순진 / 교육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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