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홀로 여신과 함께

2018-02-15 (목) 린다 그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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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여신과 함께

윤태자,‘#82

젊은 남자들이 말을 탄다,
파랑트리티스, 촉촉한 해변의 모래 위에서
앞으로 뒤로 속력을 내며.
밀려오고 밀려나가는 파도와 함께,
이곳이 여신이 사는 바다다,
애인을 빼앗긴, 화난 여신.
사람들은 말한다
빨간 색은 입지 마라, 파란 색도 입지마라,
수영도 하지마라. 그리고 공물을 바쳐라.
나는 코코낫을 바친다. 사랑하는 남자를
지켜 달라고. 파도는 그것을 도로 밀어낸다.
나는 더 멀리 던진다.
‘여신이 당신의 공물을 받아들이지 않네요’ 라고
늙은 여인이 말한다.
아마도 그녀가 나를 좋아해서 함께
게임을 하자는 건지도 모르죠. 라고 나는 말한다.
늙은 여인은 침묵한다.
말은 천으로 눈을 가렸고
청년들은 용감한 척, 옆도 보지 않고
몸을 던져 달린다. 파랑트리티스 젖은 모래 위에서
그들의 아름다운 말을
미끄러져 오르고 내린다.

Linda Gregg ‘홀로 여신과 함께’
임혜신 옮김

파랑트리트스라는 인도네시아의 해안에는 사랑을 잃은 여신이 살고 있다는 전설이 있다. 그 여신은 질투와 근심으로 피부가 파랗게 변했다고 한다. 신비의 물로 병은 고쳤지만 다시는 세속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그녀의 바다는 사랑과 질투와 격정의 잔해로 빛나고 있다. 거기서는 빨간색을 입으면 안된다. 파란색을 입어도 안된다. 견디지 못한 그녀가 폭풍을 불러올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연인을 위해 바치는 공물을 파도의 발끝으로 밀어내는 그녀는 오히려 귀엽게 매혹적이다. 말달리는 청년 그 누구도 그녀를 유혹하지 못하는지 슬픔의 파란 베일만이 홀로 눈부시다.임혜신<시인>

<린다 그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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