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훼손된 공평’ 에 대한 분노

2018-02-14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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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와 최순실에게 거액의 뇌물을 건넨 혐의 등으로 기소된 삼성 이재용 부회장에게 지난 주 2심 재판부가 내린 집행유예에 대해 ‘솜방망이 판결’ ‘유전무죄의 부활’이라는 비판이 쏟아지는 등 후폭풍이 거세다.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던 이 부회장이 풀려나는 것을 보며 떠올린 것은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인 트라시마코스였다. 트라시마코스는 소크라테스와의 논쟁 중 “법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자 “법은 강자의 이익이다. 법은 또 거미줄과 같다. 작은 곤충들은 이 거미줄에 걸려들지만 큰 짐승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대답했다.

일반인들은 수천만 원대의 범죄만으로도 수년의 실형을 살지만 재벌들은 수십억, 수백억대 뇌물과 횡령 혐의를 저지르고도 유유히 빠져나오는 오늘의 현실을 트라시마코스는 수천 년 전 이미 꿰뚫어보고 있었던 것이다. 판결을 살펴보면 재판부가 집행유예를 결정해 놓고 필요한 법리를 만들어간 느낌을 갖게 된다.

특히 정유라의 독일 승마지원에 쓰인 돈을 뇌물로 보면서도, 중형이 내려지는 국외재산도피죄를 적용하지 않은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한 시사평론가는 “남의 집 물건을 훔치려고 담을 넘어 문을 따고 들어간 도둑에게 절도죄만 적용하고 주거침입죄는 묻지 않는 것과 같은 판결”이라고 꼬집었다.


판결에 대한 부정적 기류는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집행유예 판결에 공감하지 않는다는 사람이 대략 59%, 공감한다는 비율은 36% 정도인 것으로 나타난다. 젊은 세대와 진보·중도 성향 국민들 사이에서는 부정적 기류가 압도적인 반면 고령층과 보수층에서는 공감 여론이 우세했다. 이런 조사 결과는 기존 사회심리학 연구들과 상당히 일치한다.

“공평함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관련한 답변은 정치적 성향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 진보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 대부분에게 공평은 ‘평등’의 의미가 강하다. 그러니 ‘유전무죄’로 보이는 판결에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는 것이다.

반면 보수적인 사람들은 공평을 ‘비례’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기여한 만큼 그에 따른 보상을 받아야 하는 게 당연하니 이로 인해 약간의 불평등이 발생한다 해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긴다. 보수계층이 왜 재벌 이재용의 집행유예 석방을 훨씬 더 관대하게 받아들이는지 설명이 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공평하지 못한 것을 잘 견디지 못한다. 공평하지 않다고 느낄 경우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이를 바로 잡으려 한다는 사실은 ‘최후통첩’이란 게임이론을 통해 밝혀진 바 있다.

하지만 이런 본능적 성향에도 불구하고 불공평에 대한 반응은 그 때 그 때의 정치적 현실과 사회문화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민주화 이전 시절에는 공평 혹은 평등과 완전 동떨어진 정부 결정과 사법부 판결이 나와도 국민들은 그저 묵묵히 순응했다.

하지만 민주와 평등의 가치가 확산되면서 분위기에도 변화가 생겼다. 이런 변화를 실감나게 확인시켜준 사례가 평창동계올림픽 남북단일팀 구성에 대한 젊은층의 냉담한 반응이었다. 젊은 세대는 이 사안에 대해 정치적 필요성보다는 공평이라는 가치의 훼손이란 관점에서 보고 있음이 드러났다. 젊은층일수록 이재용 판결에 공감하지 못하는 비율이 더 높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면 된다.

분노의 대상이 된 당사자들, 즉 문재인정부와 사법부, 그리고 삼성은 당혹스럽겠지만 이런 분노의 표출은 한국사회가 점차 건강해지고 있다는 징표라 볼 수 있다. 우리 몸에서 병증이 발생하고 있는데도 이를 느끼지 못하거나 드러내지 않는다면 결코 건강할 수 없다.

사회와 국가 역시 마찬가지다. 침묵할수록 그런 불공평은 한층 더 고착화되고 구성원들은 일상화된 불공평에 점차 무감각해진다. 훼손된 공평에 구성원들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그 사회가 아직은 살아 있고 깨어있다는 말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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