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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올림픽은 시작됐는데…

2018-02-12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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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염원이 촛불과 함께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지구촌 최대의 축제를 위해 60억 세계인이 서로 손을 마주 잡았다.” “…‘모두를 빛나게 하는 불꽃’ 올림픽 성화가 마침내 타올랐다.” 평창 겨울 올림픽 개막을 알리는 국내 보도들이다.

세계에서 92개국 2,920명의 선수들이 참가해 총 102개의 금메달을 걸고 대결을 펼친다. 참가국과 선수, 메달 수에 이르기까지 전 부문에 걸쳐 사상 가장 큰 규모다. 그 지구촌 축제가 강원도의 깊은 산골에서 열린다. 그 자체로도 감동적이다.

거기다가 대한민국은 세계규모 스포츠 행사 주최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1988 서울 여름 올림픽, 2002 월드컵 축구대회, 그리고 2018 평창 겨울올림픽. 그러니 신명나는 잔치마당이 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국내 언론들은 그런 분위기를 돋우려고 그런대로 꽤 애를 쓰는 모습이다. 그러나 외신이 전하는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전반적으로 착 가라앉았다고 할까. 1988년, 2002년과는 달리 대행사를 알리는 거대한 현수막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가운데 때로 뭔가 섬뜩하고 기괴한 느낌마저 감지된다.” 평창올림픽 전야를 맞아 아시아타임스가 전한 거리의 모습이다.

“30년 전 88 서울 올림픽을 통해 세계인에게 전하려는 분명한 한 가지 메시지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여기 있다’는 거였다. 이를 위해 전 국민이 하나가 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에는 그런 메시지가 보이지 않는다. 거기다가 2002년 서울 월드컵 대회 때 넘쳐나던 흥과 멋도 찾을 길이 없다.” 계속 되는 지적이다. 왜 한국인 특유의 신명의식이 보이지 않는 걸까.

겨울 올림픽은 대중성에 있어 여름 올림픽에 크게 처진다. 그 결과 일수도 있다. 한국은 선진국이 됐다. 그러니 뭘 더 세계인에게 보여줄 것이 있는가. 그런 한국인의 자의식 과잉의 발로로도 보인다.

그러나 그 보다는 평화의 축제는 잠깐이고, ‘평창 이후’ 들이 닥칠 온갖 청구서, 그 부담이 무겁게 짓눌러 오기 때문이 아닐까.

개막식과 폐막식 등 올림픽경기 기간 동안 네 번만 사용된다. 평창올림픽 메인 스타디움 말이다. 건설비용만 1억800여만 달러가 들었다. 그런데 올림픽이 끝나면 바로 헐린다고 한다. 다른 경기 시설들도 비슷한 운명을 맞을 예정이다.

다른 말이 아니다. 대략 130억 달러가 들었다. 평창 올림픽을 위해. 그 투자의 손익계산서가 불분명한 것이다. 그렇지만 평창올림픽을 통해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외교적 돌파구가 마련된다면 투자는 그런대로 잘 된 편이다.


더 두고 보아야겠지만 지금까지 전해져오는 시그널들은 극히 부정적이다. 평창 올림픽은 평화의 시작이 아니라 평화의 거품으로 끝날 수 있다는 것. 이와 함께 올림픽 폐막 후 워싱턴에서, 또 평양에서 날라들 막대한 액수의 청구서들을 문재인 정부는 과연 감당해낼 수 있을지 벌써부터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평화올림픽’에 ‘올인’ 했다. 평화에의 기대를 잔뜩 높인 것이다. 그 문재인 정부의 심리를 교묘히 파고들면서 김정은은 여동생 김여정까지 보냈다. 아주 파격적인 카드를 제시한 것. 문제는 김여정 방남에 따라 평양 측이 내밀 청구서의 내용이다.

그렇지 않아도 대화초기부터 말도 안 되는 제의를 하고 나섰다. 보수 언론의 입에 재갈을 물려라, 탈북자를 되돌려 보내라 등등. 올림픽 이후 평양 측은 대대적인 평화공세와 함께 향후 대북제제문제, 한미훈련 등과 관련해 김여정 방남을 대가로 파격적 양보를 요구해올 수도 있다.

그 경우 일종의 ‘대북 피학성음란증세’를 보이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과연 균형 잡힌 대응을 할 수 있을지 전문가들은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미국과 한국은 이제 북한 문제를 놓고 공개석상에서도 이견을 드러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지의 지적이다. 북한과 대화를 추구하면서 워싱턴을 따돌린다. 그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신뢰를 거두었다. 상호 불신에 따른 각자 행보는 평창올림픽 참관 차 한국을 방문한 펜스 부통령 행보에서 두드러지고 있다는 것이 워싱턴포스트의 보도다.

요약하면 이렇다. 문재인 정부의 평화올림픽 제창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북한의 대립각은 더 첨예해졌다. 펜스 미국 부통령이 평창올림픽 개회식 리셉션에 참석했다가 북한 김영남과의 한 테이블 동석을 거부하고 퇴장한 외교참사가 바로 그 상징이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평창 이후에 찾아올 봄을 고대하며 홀로 평화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중재외교가 미국과 북한 사이에 끼어 한 발짝도 못 움직이는 형국에서.

“올림픽은 시작됐다. 그러니 일단 즐겨라. 봄이 오면 한반도는 올림픽 이전의 그 상황으로 되돌아갈 테니까. 일촉즉발, 전쟁으로 빠져들 수 있는 그런 상황으로….” 내셔널 인터레스트의 해리 카지애니스의 경고다.

무슨 말인가. 가치관이 결여된 원칙 없는 대화는 평화의 장애물일 뿐이다. 그리고 한반도의 봄은 아직 멀었다는 얘기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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