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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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바위독수리가 비상하는 새 날을 고대하며…

2018-02-09 (금) 정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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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agle Rock (1,937 ‘)

거대한 바위독수리가 비상하는 새 날을 고대하며…

Eagle Rock에 올라서 보는 태평양 풍경.

거대한 바위독수리가 비상하는 새 날을 고대하며…

Eagle Rock의 뒷모습.


거대한 바위독수리가 비상하는 새 날을 고대하며…

등산시작점 주변의 풍경.


전라남도 화순의 천태산에 있는 운주사의 와불을 생각나게하는 곳이 이곳 산타모니카산맥에 있으니, 바로 Topanga State Park에 있는 Eagle Rock 이다.

이 독수리바위는 LA시 경계안의 공원으로서는 최대규모인 11,000 에이커에 달하는 Topanga State Park의 대표적인 명소인데, 웅장한 바위 봉우리의 최상단부가 눈아래로 망망하게 펼쳐지는 태평양을 응시하고 있는 독수리의 뒷모습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머리에서 꼬리까지의 크기가 적어도 30m는 될만큼 큰 규모이다.

화순의 운주사에는 대략 12m 길이의 좌불이 땅에 쓰러진 모습으로 새겨져 있는데, 이 석불이 일어나는 날이면, 새로운 좋은 세상이 도래한다는 미륵신앙의 전설이 서려있다고 한다. 아마도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가렴주구와 학정에 굶주리고 억눌린 우리 선조들의 한이 승화되어진 유토피아의 이야기일 것인데, 그래서인지 황석영의 대하소설 ‘장길산’ 의 대미는 이 운주사의 와불에 얽힌 전설로 마무리되고 있다.


Topanga State Park의 Landmark인 이 독수리바위의 머리위에 올라서서 푸르른 바다를 바라보노라면, 불과 200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 낙원에서 대를 물려 살아왔던 Tongva나 Chumash 사람들이 아마도 이 독수리바위가, 아니 바위독수리가, 저 광막한 바다를 향해 힘차게 비상하는 날, 그들에게 다시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전설이나 신앙쯤이 있을 수 있었겠다는 상념이 드는 것은, 그들과 우리는 같은 핏줄일 것이라는 친밀감이 있어서 더 그럴 것이다.

무뢰했던 당시의 유럽인들에게 평화롭던 삶과 그 터전이 가혹하게 유린되어질 때, 그들이 새겼던 한은 얼마나 깊었을 것이며, 냉혹한 현실을 부정하며 지나간 세월에 대한 동경과 다시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은 얼마나 통절했을 것인가. 그러나 천지는 무정했고 현실은 냉혹했다.

노자가 갈파한 “천지불인이만물위추구(天地不仁而萬物爲芻狗)” 는 바로 이러한 경지가 그 한 예가 되는 것 인지도.

만약 운주사에서와 같은 전설이 이곳에도 서려있었다고 한다면, 백인들에 의해 이미 화려하게 열려진 오늘의 이러한 세상이 그들에게도 새로운 세상이긴 한 것일까, 아니면 아직은 미래완료형으로 남아있을 또 다른 새 세상이라고 해야할까?

Trippet Ranch에서 시작하는 Eagle Rock까지의 산행은 Loop 형으로 왕복 4.5마일이며, 순등산고도는 807’에 지나지 않으며, 3~4시간이면 충분하다.

가는 길

LA 한인타운에서 Freeway 10의 West 끝까지 가서 Pacific Coast Highway North를 타고 5.6마일을 가면 Topanga Canyon Road가 오른쪽으로 나온다. 이를 따라 4.6마일을 북상하면 오른쪽으로 Entrada Road가 있다. 이를 따라 1.1마일을 올라간다. Topanga State Park이라는 안내판과 아침 8시에 문을 여는 정갈한 Kiosk가 있는 넓은 주차장에 이른다. LA 한인타운에서 여기까지 총 24마일이다.


10달러를 비치된 봉투에 담아 무인주차료 징수함에 넣고, 주차티켓을 차 안에 잘 걸어둔다. 공원 게이트가 아직 닫혀 있는 이른 시각에 도착했거나, 주차비를 아끼려면 공원 바깥의 도로에 주차하면 된다.

등산코스

주차장의 동쪽 끝에서 좌우로 길이 나뉘는데, 좌측은 Musch Trail로 이어지고 우측은 Trippet Ranch Trail이라는 명칭으로 Eagle Springs Fire Road로 이어진다.

올라 갈 때나 돌아 올 때 각기 다른 루트를 한번씩 이용하면 좋을 것이므로, 어느 쪽으로 출발해도 괜찮겠다. 왼쪽은 대체로 계곡을 따라 가게 되므로 푸르른 수목들의 정취가 좋고, 오른쪽은 능선을 따라가므로 바다를 포함한 넓은 전망이 좋다. 우리는 오늘 우측으로 오르고 좌측으로 하산키로 한다. 등산로 입구에 Eagle Rock까지 2마일이라는 이정표가 있는데, 왼쪽의 Musch Trail로 오르는 거리는 2.5마일이다.

아름다운 큰 Oak Tree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곳을 지나 0.5마일을 가면 오른쪽으로 Santa Ynez Canyon Trail이 갈라지며 Canyon 과 태평양의 아름다운 모습이 나타난다. 우리는 직진이다.

정면으로 멀리 뿔 모양의 작은 봉우리 2개가 보이는데, 오른쪽의 바위봉이 Eagle Rock이다. 1.5마일지점에 이르면 길 왼편에 공원의 안내판이 있고 그 왼쪽으로는, Trippet Ranch 의 주차장 왼쪽에서 올라오는 Musch Trail Junction이 있다. 나중에 하산할 때는 이 길을 이용할 것이나 지금은 안내 팻말이 가리키는 Eagle Rock 방향의 완만한 오름길로 나아간다.

우측으로는 구비구비 초록의 계곡과 파아란 바다의 경치가 있어 탄성을 유발한다. 이윽고 오른쪽의 낮은 언덕에 Eagle Rock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다.

언덕위에 올라서면 거대한 바위 위에 두 날개를 접고 앉아 태평양을 응시하고 있는 집채만한 바위독수리의 뒷모습이 발 아래로 나타난다. 두 날개를 활짝 펼치면 아마도 60m가 넘을 듯한 큰 새의 형용이다. 장자의 ‘소요유’에 언급된 ‘붕’을 연상해 본다.

해발 1,937’의 고도인 독수리 머리에 올라본다. 태평양의 수평선이 바로 코앞이다. 어느 순간 이 바위 독수리가 나를 태운 채 요란한 굉음과 함께 하늘로 솟구쳐 오를 것 같은 느낌이다. 갑작스런 백인들의 출현과 함께 급속한 부족의 몰락을 탄식하던 Tongva인들이 이곳에 올라서서 그들을 싣고 새로운 세상으로 날아가 주기를 간절히 꿈꾸었을 법 하다.

붕새의 머리 아래로 구멍이 숭숭 뚫린 돌출부분이 있어 내려가 본다. 마치 둥근 얼음집 Igloo 모양에다 큰 텐트속인 듯 사람이 들어가 앉거나 누울 수 있는 공동이 있다. 자연의 정교한 솜씨가 경이롭다. 모래층이 오랜 기간을 두고 굳어져 이루어졌다는 사암봉인데 중간 중간에 자갈들이 줄을 이루며 박혀 있다. 동굴안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곳을 오른 요즘 사람들에 의해 각양각색의 색깔과 솜씨로 작은 그림과 글들이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저마다 무언가를 진지하게 사랑하고 염원하는 마음으로 이런 것들을 남겼을 것인데, 이 또한 인간의 원초적인 표현본능이 모아진 ‘사람사는 동네’의 소박한 체취라고도 하겠다.

하산시에는 Musch Trail Junction에서 오른쪽으로 나있는 길을 택한다. Junction에서 5분정도를 내려오면 관목숲 가운데 키큰 풀들만이 자라있는 넓은 공터에 이르른다. Musch Meadow 이다.

다시 5분정도를 내려오면 Musch Camp 라는 팻말에 이어 장대한 Eucalyptus 들이 울타리를 이루고 있는 옛 Musch Ranch 에 닿는다. Eagle Rock에서 1.5마일을 내려 왔고 주차장까지는 1마일이 남은 지점이다. 요즘엔 Camp 로 이용하고 있는데 하루에 7달러로 주말에 한해 선착순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이곳을 지나 숲으로 난 오솔길을 내려오다보면 토팽가 캐년쪽의 전망이 좋은 지점에 긴 벤치가 놓여있다. 다시 걸음을 옮기노라면 길이가 5m 남짓한 정갈한 다리를 만나고 이를 건너게 된다. 주차장까지 반마일이 채 안남았다. 곧 또 하나의 Meadow가 나오고 포장도로에 닿게 된다.

왼쪽으로 길을 잡아 걸으면 곧 Meadow 가 끝나는 곳의 오른편으로 등산로가 갈려진다. 산타모니카 산맥을 따라 뻗어가는 유명한 Backbone Trail이 그쪽으로 빠져 나간다. 포장도로의 정면으로 우리가 출발했던 주차장이 바로 앞에 보인다. 이곳이 바로 Trippet Ranch로 이제 오늘의 산행을 다 마친 것이다.

원래 이곳 Trippet Ranch는 McAtee라는 이름의 양봉가가 살던 곳이었는데, 1894년에 Topanga 최초의 정식 우편배달부였다는 Joseph Robison이 이를 구입하여 Topanga School의 교사였던 부인과 함께 네 아이를 키우며, 아마도20년 이상 오랫동안 이곳을 보금자리로 했던 것 같다. 이들의 삶이, 19세기 후반이라는 시대적 배경이나, 완만한 구릉과 푸른 초원이 있는 자연환경이나, 네 아이와 그 부모들이 주인공인 점 등이, 한국에서도 인기리에 방영됐었던 왕년의 인기TV드라마 ‘초원의 집’을 연상시킨다고 하겠다.

1917년에 이르러 LA District 판사였던 Oscar Trippet Sr.가 Cora라는 젊은 아내와 살게 됨으로써 Trippet Ranch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게 되어지는데, 다시 1967년에 State Parks에서 이 곳을 인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요일 오후에는 주차장 동쪽의 Nature Trail을 통해 닿을 수 있는 Nature Center가 개관된다고 하니, 시간이 맞으면 이곳에 들러 이 공원지역에 서식하고 있는 동식물에 대한 호기심을 풀어보는 것도 좋겠다.

정진옥 310-259-6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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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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