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초당 17만달러, 수퍼보울 광고 감상법

2018-02-07 (수) 류정일 경제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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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열린 2018 수퍼보울에서 필라델피아 이글스가 날아올랐다.

창단 85년 만에 첫 우승을 낚아챈 언더독의 반란으로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와는 13년 만에 정상에서 재회해 설욕에 성공했다. 백업 쿼터백으로 시작, MVP로 시즌을 마감한 닉 폴스의 인생역전과 함께 패트리어츠 쿼터백 톰 브래디의 통산 6번째 우승 무산 등 다양한 관전 포인트가 주는 재미가 쏠쏠했다.

수퍼보울을 보는 재미가 컸던 것은 비단 챔피언전이 주는 긴장감과 의미들 뿐 아니라 중계 중간에 노출되는 광고들도 훌륭히 제몫을 해냈기 때문이다. 광고료가 30초에 500만달러나 됐다고 하니 ‘대체 얼마나 대단한 걸 보여주려고?’ 하는 마음에 시청자들을 집중하게 만들었다.


올해의 광고들은 트럼프 행정부 들어 정치색으로 고심했던 지난해의 부담을 덜고 휴머니즘과 유머로 승부하는 작품들이 많았던 게 특징이다.

현대차는 소아암 환우 돕기 프로그램으로 생존한 이들과 현대차 소유주들이 만날 수 있게 해줬고, 버드와이저는 빈 캔에 생수를 채워 지난해 태풍 피해 지역에 전달했음을 담담하게 보여줬으며, 버라이즌은 긴급 구조대원들이 활약할 수 있도록 믿을 수 있는 네트웍을 책임진다고 강조했다.

유머 코드도 많았는데 두 유명 배우는 각각 매콤한 스낵과 시원한 소다가 최고라며 랩 배틀을 했고(도리토스·마운틴듀), 레이싱 트랙에서 전속력으로 후진한 자동차 안에서는 회춘한 라커가 내렸으며(기아차 스팅어), 가수 입으로 직접 대표곡 제목이 나오도록 유도하다가 실패했지만 비트코인 선물 거래가 가능하다고 알리는(TD아메리트레이드) 등 위트가 넘쳤다.

여기에 자동차와 행인들이 다니는 평범한 거리의 모습을 30초 동안 그저 보여주기만 한 혼다를 비롯해 유명 영화배우를 조연으로 처리해 화면 주변에 배치한 미켈럽 울트라 맥주도 눈길을 끌었다. 또 특색 있는 기계음으로 유명한 ‘알렉사’가 목소리를 잃었다는 가정 하에 유명 배우와 가수들이 목소리를 빌려주며 엉뚱한 웃음을 준 아마존의 광고도 널리 회자됐다.

그중 가장 큰 찬사를 받은 작품은 단연 세탁세제 타이드였다. 자동차, 맥주, 보석, 보험, 면도기, 소다, 음성인식 스피커 등의 광고인 듯 보여주다가 사실 출연자들이 입은 깨끗한 옷이 모두 타이드로 세탁한 것이라는 메시지다. 1쿼터 시작 초반에 나온 이 광고 때문에 이후 방영된 모든 작품들이 타이드 광고로 보이는 착시 현상을 일으켰다는 후문이다.

풋볼의 인기가 시들해졌고, 수퍼보울 시청자 숫자도 매년 줄고 있다고 하지만 이날 선보인 광고들은 많은 이들에게 신선한 영감을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심각하게 분석하며 대단한 마케팅 기법이나 판촉 기술을 뽑아낼 필요는 없다. 그저 초당 비용이 17만달러에 달하는 꽉 짜인 예술로서 이들을 대하면 된다. 인간의 뇌는 때로 ‘멍’ 때릴 때 ‘번쩍’하는 법이니까.

<류정일 경제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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