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올림픽은 스토리다

2018-02-07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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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시즌 최대 스포츠 이벤트인 23회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대한민국 강원도의 작은 마을 평창이 이뤄낸 기적의 축제가 세계인들의 뜨거운 관심과 설렘 속에 드디어 막을 올리는 것이다. 이런 관심을 반영하듯 참가규모도 동계올림픽 사상 최대이다.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올림픽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올림픽이 표방하는 모토를 두 단어로 정리한다면 ‘평화’와 ‘땀의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스포츠에 의한 인간의 완성과 경기를 통한 국제평화의 증진” “올림픽의 의미는 승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데 있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이라고 올림픽 강령이 분명하게 밝히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이상이 퇴색하고 무색해진지는 오래다. 올림픽을 지배해온 것은 스포츠 내셔널리즘과 상업주의다. 올림픽이 국가들 간 자존심 싸움의 장으로 변질되면서 ‘평화’와 ‘땀의 가치’라는 모토는 이제 ‘메달 수’와 ‘메달 색’으로 대체됐다. 국가차원의 도핑까지 서슴지 않은 러시아의 경우는 올림픽의 변질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스캔들이었다.

올림픽에서의 성적이 국민들의 자부심에 일정부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번 올림픽에서 주최국 한국은 금메달 8개 등 총 20개 메달로 종합 4위에 오르는 게 목표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응원해 소기의 성적을 거둔다면 좋은 일이겠지만 설사 그런 결과를 얻지 못한다 해도 상관없다.


무엇보다 올림픽에는 공식순위 집계가 없다. 각자의 방식에 따른 비공식 집계들이 있을 뿐이다. 올림픽을 코앞에 두고 한국의 전통강세종목인 쇼트트랙에서 감독이 훈련 중 여자선수를 폭행한 불미스런 일이 일어났다. 이렇게 얻은 메달에는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

평창올림픽이 모처럼 올림픽 이상의 구현을 위해 노력한 대회로 기록되고 기억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분위기와 여건은 어느 올림픽 때보다도 긍정적이다. 역대 최대인 참가규모도 그렇고 무엇보다 북한의 참가로 평화올림픽에의 기대 또한 높아지고 있다.

올림픽을 진정한 축제로 만들어주는 것은 화합과 열정의 스토리들이다. 마침 이번 올림픽의 슬로건이 ‘하나된 열정’(Passion Connected)이다. 올림픽에는 언제나 스토리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너무 성적에만 목을 매다 보면 올림픽이 선사해주는 진정한 선물들을 그냥 지나치거나 놓칠 수 있다.

최근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는 것이 스토리다. “중요한 것은 제품의 품질이 아니라 스토리다. 마케팅이란 바로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마케팅의 귀재로 불리는 세스 고딘의 지적이다. 사람들은 스토리를 얼개로 해 기억을 구성해 나간다.

올림픽도 마찬가지다. 관객들과 시청자들에게 올림픽을 인상적으로 각인시키고 오래 기억토록 만들어 주는 건 스토리들이 선사해주는 감동과 좋은 느낌들이다. 아무리 금메달이라 해도 스토리가 없는 메달은 곧 잊히거나 희미해진다. 몇 년 전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역사를 바꾼 올림픽의 13개 순간을 소개하면서 그 가운데 하나로 2000년 시드니올림픽 남북한 동시입장을 꼽았다. 이런 게 스토리의 힘이다.

올림픽 방송사인 NBC-TV도 스토리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중계를 한다. 중계 도중 수시로 참가선수들과 참가국들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내보낸다. 이것을 접하면서 시청자들은 경기에 더 몰입하게 된다. 특히 이번 평창올림픽에서는 처음으로 동부와 서부의 시차를 고려하지 않고 동시에 방송할 계획으로 있어 한층 더 생동감 넘치는 올림픽 중계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과연 이번 올림픽에서는 어떤 감동과 희열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두툼한 이야기책의 첫 장을 넘기는 순간은 항상 호기심과 기대로 설레게 된다.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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