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도 시계’

2018-02-06 (화) 김승희 (19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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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시계’

한석란, ‘Inner Flares 8’

애도의 시계는 시계 방향으로 돌지 않는다
시계 방향으로 돌다가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다가 자기 맘대로 돌아간다
애도의 시계에 시간은 없다

콩가루도 기도를 할까
콩가루가 기도를 할 수 있을까
콩가루가 기도를 한다면
어떤 기도를 할까
콩가루는 자기를 복원해달라고 기도를 할까
콩가루가 복원될 수 있을까
콩가루에게 어떤 기도가 가능할까

애도의 시계는 그런 기도를 한다
가루가루 빻아져 콩가루들은 날아갔는데
콩가루는 콩가루의 소식을 모르고
콩가루는 콩가루의 주소를 모르고
콩가루는 향수를 모르고


콩가루는 다만 바람 속의 근심으로 바람의 애도를 한다
회오리를 타고 시시때때
애도의 시계는 꿈에서 거꾸로 나온다

김승희 (1952- ) ‘애도 시계’ 전문

왜 시인은 자신의 슬픔을 막장의 은유인 콩가루와 연관 짓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 모든 존재가 클 것도 작을 것도, 옳을 것도 그를 것도 없는, 그저 콩가루처럼 결국은 별게 아니라는 뜻이리라. 만일 우리가 조금이라도 특별한 존재라면 간절한 애도와 기도에 무슨 답이라도 있어야 되는 것 아니겠는가. 시간의 회오리를 타고 과거와 미래, 이승과 저승을 애절하게 떠도는, 결코 별빛처럼 승화할 리 없는, 우리는 그저 덧없는 먼지일 뿐이다. 막장 같은 시공의 대해를 떠다니는 애도의 노래도 콩가루처럼 덧없을 뿐...
임혜신<시인>

<김승희 (19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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