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탈진실 보도’의 피해자들

2018-01-31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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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북한 모란봉악단 단장으로 잘 알려진 현송월이 평창올림픽 예술단 파견 실무접촉에 북측 대표로 모습을 드러내면서 다시 한 번 이슈로 떠오른 것은 지난 2013년 8월 한국 한 유력 신문의 현송월 관련 보도였다. 당시 이 신문은 김정은의 옛 애인인 현송월 등 10여명이 음란물을 찍어 총살됐다는 기사를 ‘단독 보도’로 포장해 내보냈다. 구체적인 이름들과 상황까지 묘사한 소설 같은 이 기사를 다른 언론들이 경쟁적으로 베끼고 받아썼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죽은 줄로만 알고 있던 현송월이 버젓이 살아 북측 대표단으로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그런데도 이 신문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남쪽을 방문한 현송월의 온갖 시시콜콜한 동정을 보도하는 데 열을 올렸다. 자신들이 내보냈던 대형 오보에 대해서는 어떤 사과나 해명도 없었다.

이 오보는 한국 언론의 고질적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다. ‘아니면 말고’식의 무책임한 보도행태가 그것이다. 사실과 다른 오보를 내더라도 별로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치열한 보도경쟁 속에서 정확한 사실의 확인이라는 언론의 기본가치는 뒷전이 되기 일쑤다. 이런 무책임한 보도들에 의해 무수한 피해자가 발생했다. 언론이 뒤늦게 잘못된 내용을 정정한다 해도 대부분은 이미 회복불능의 타격을 받고 난 다음이다.

언론의 이런 ‘아니면 말고’식의 무책임은 특히 북한관련 보도에서는 거의 일상화 수준에 도달해 있다. 이해되는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폐쇄적인 북한은 그 실상을 취재하기가 가장 어려운 체제이다.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단편적 정보들에 의거해 보도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만큼 북한관련 보도에서는 보다 더 신중함과 주의가 뒤따라야 한다.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정확한 사실을 확인하기보다는 오보라도 상관없으니 우선 내보내고 보자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 언론사에 남을 초대형 오보들은 대개 북한과 관련된 것들이다. 오죽하면 “김일성과 김정일은 예수보다 위대하다. 예수는 한 번의 죽음과 부활을 경험했지만 이들은 한국 언론에 의해 여러 번의 죽음과 부활을 경험했으니 말이다”라는 비아냥까지 나돌았겠는가. 이제 그 기적의 인물 속에 현송월도 포함시켜야 될 판이다.

오보를 내더라도 책임질 일 없고 언론중재위를 통한 정정요청이 들어올 일도 없으니 ‘아니면 말고’식의 잘못된 행태를 계속하는 것이다. 이런 보도는 상대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인식을 방해하고 결과적으로 국익에까지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트럼프가 당선된 2016년 영국 옥스퍼드 사전은 그해의 단어로 ‘탈진실’(post-truth)을 골랐다. SNS가 가짜 뉴스들로 뒤덮이고 진실과 허위가 뒤섞인 가운데 트럼프가 승리하면서 세계가 충격을 받고 있던 상황이었다. 당시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관련기사를 통해 “탈진실의 정치가 노리는 것은 그저 상대진영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우리 안의 편견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일부 한국 언론들의 보도행태에도 이 진단이 딱 들어맞는다. 오보의 위험을 알면서도 ‘아니면 말고’식 기사들을 내보내는 것은 그런 기사들을 열광적으로 수용하는 계층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분명한 취재원들을 인용한 “북한 월드컵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숙청됐다”는 식의 보도들이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이런 기사들은 열광적인 독자와 시청자들을 거치면서 사실로 둔갑해 퍼져나간다.

교과서적 이야기 같아도 언론의 존재 이유는 진실을 추구하고 이를 알리는 데 있다. 언론이 진실과 사실의 가치를 가벼이 여기면서까지 뉴스보도를 자신의 입지 구축과 이해관계를 위한 도구로 이용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이런 ‘탈진실 보도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는 집단은 이것이 씌어주는 편견의 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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