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막판이 된다는 것’

2018-01-30 (화) 문보영(19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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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판이 된다는 것’

정은실 ‘어머니’

후박나무 가지의 이파리는 막판까지 매달린다. 그늘을 막다른 골목까지 끌고 갔다.
막판 직전까지. 그 직전의 직전까지. 밑천이 다 드러난 그늘을 보고서야 기어이
후박나무는 그늘을 털어놓는다. 막판의 세계에는 짬만 나면 밤이 나타나고 짬만 나면
낭떠러지가 다가와서. 막판까지 추억하다 잎사귀를 떨어뜨렸다. 추억하느라
파산한 모든 것 붙잡을 무언가가 필요해 손이 생겼다. 손아귀의 힘을 기르다가
이파리가 되었다. 가지 끝에서 종일 손아귀의 힘을 기르고 있다. 그러나 양손이
모두 익숙지 않은 것들은 양손잡이일까 무손잡이일까. 그늘을 탈탈 털어도
가벼워지지 않는 애면글면 매달려 있는. 한 잎의 막판이 떨어지면 한 잎의
막판이 자라고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어서 손이 손바닥을 말아 쥐었다.
손을 꽉 쥐면 막판까지 끌고 갔던 것들이 떠오른다. 막판들이 닥지닥지 매달려 있다.
막판 뒤에 막판을 숨긴다.

문보영(1992- ) ‘막판이 된다는 것’

막판이란 말에 최악조건에서 희망을 밀어 올리는 생명력이 묻어있다. 그늘이 있고 낭떠러지가 있고 애면글면 갈망이 있고 추억이 있다. 막판은 피어나는 새싹들이며, 떨어지며 주먹을 쥐는 잎새들이며, 힘든 시간을 건너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막판이 지면 또 다른 막판이 피어난다. 척박한 환경을 살아내야 하는 나무, 꽃, 짐승들 모두 막판의 존재다. 그러니까 막판은 그저, 살아간다는 일이기도 하다. 마지막 잎새가 가진 상실의 센티멘탈한 감성과 막판이라는 막장의 감성이 어울려 어느 골목의 잎 피고 지는 풍경이 닥지닥지 인간적 소음으로 넘친다. 임혜신<시인>

<문보영(19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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