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트럼프의 할아버지, 트럼프의 어머니

2018-01-17 (수) 김상목 정책사회팀장 부국장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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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트럼프. 트럼프의 할아버지이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그는 독일 남서부 지역 라인 강변의 소도시 ‘칼쉬타트’(Kallstadt)에서 나고 자란 순수혈통의 독일인이었다. ‘팔츠’(Pfalz)라고도 불리는 이 곳은 끊임없이 외침에 시달린 지역이었다. 스페인, 오스트리아, 러시아, 프랑스 등과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전쟁으로 목숨 부지하기 어려웠던 이 지역 독일인들의 꿈은 ‘탈출’, 바로 이민이었다. 당시 미국은 이미 유럽인들에게 꿈에 그리는 풍요의 땅이었고, 선망의 대상이었다. 이 이민행렬 속에 트럼프의 할아버지, 프리드리히가 있었다.

1885년 소년 프리드리히는 마침내 꿈을 이룬다. 앞서 1년 전 뉴욕에 터를 잡은 누이 캐더린이 도움을 줬다. 지금으로 치면 형제·자매 초청으로 할아버지 프리드리히는 16세에 미국 이민비자를 손에 쥘 수 있었다. 그는 영어도 한 마디 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어머니, 메리 앤 맥레오드도 가족이민 1세였다. 미국인과 결혼해 뉴욕 퀸즈에 살고 있던 언니의 초청으로 1930년 18세 때 스코틀랜드에서 미국으로 이민 왔다. 언니의 이민초청을 빼면 그녀는 변변한 기술도, 학력도 가지지 못했다. 이민 6년차였던 1936년 메리는 남편 프레드 트럼프를 만났고, 이 부부 사이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태어났던 것.


포브스지는 16일 트럼프 가족의 이같은 가족이민사를 조목조목 거론하며, 트럼프식 이민개혁의 모순을 지적했다. 한 역사학자는 “트럼프의 할아버지도, 어머니도 모두 형제·자매 초청으로 온 이민자들로, 트럼프가 바로 자신이 그리도 반대하는 ‘연쇄 가족이민’의 산물”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의 할아버지, 프리드리히가 이민 올 당시 미국은 역사적으로 가장 반이민 분위기가 팽배하던 시기였다. 1882년 ‘중국인 배척법’(Chinese Exclusion Act)이 제정됐고, 1892년에는 소위 ‘기어리 법’(the Geary Act)이 제정돼 중국 이민자들을 대거 추방해야 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1897년에는 더 기괴한 법안이 연방의회를 통과한다. ‘영어를 읽고 쓰지 못하는 외국인은 이민을 금지한다’는 법안으로 현재의 ‘메릿베이스 이민개혁’을 연상시킨다.

영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했던 프리드리히에게 만약 이 법이 적용됐다면 어떻게 됐을까. 당시 이 법안은 그루버 클리블랜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시행되지 못했다. 트럼프 일가와 같은 수많은 이민자 가족들의 ‘아메리칸 드림’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클리블랜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덕분이라고 역사학자들은 지적한다. 그것이 미국의 위대한 이민역사를 만들어왔다.

자신이 비난하는 ‘연쇄가족이민자’의 자손으로 이민 3세인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은 자가당착이자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19세기말 반이민법안을 무산시켰던 클리블랜드 당시에도 ‘이민은 국가적 위협’이라고 목소리를 높인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이들에게 클리블랜드는 이같은 말을 남겼다. “미국에 대한 위협은 ‘못 배운 이민자들’이 아니라 ‘현란한 선전술을 가진 선동가들’에게서 나온다.”

<김상목 정책사회팀장 부국장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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