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미동맹전선에 이상 있다’

2018-01-08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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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호들갑을 떨고 있다-. 김정은이 신년사를 통해 한마디 했다. 먼저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위에 있다며 미국에 경고를 했다. 그리고는 평창올림픽에 대표단을 파견하고 당국자 만남을 추진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핵 단추 이야기에는 별 말이 없다. 그러면서 김정은의 그 대화용의 말 한 마디에 문재인 정부는 아주 감격한 모양새다. 열띤 호응과 환영의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 안팎에 포진해 있는 ‘문재인의 안보 외교 브레인’으로 불리는 사람들은 한 술 더 뜬다.

김정은이 손짓만 했을 뿐인데 한미동맹 불필요설에, 한미군사훈련 중단 주장 등을 쏟아내고 있다. 그도 모자라 김정은 찬가도 서슴지 않는다. ‘강단 있는 지도자’에 ‘예측 가능 인물’이라는 등. 그 모습이 그렇다. 호들갑을 떨고 있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영하 10도가 넘는 혹한의 날씨다. 그 서울 발 뉴스를 통해 전해지는 문재인 정부의 분위기는 봄날이다. ‘김정은 위원장 동지의 말씀 한 마디’에 핵 위기도 해소되고 태평성대가 찾아오기나 한 것 같이.

뭐랄까.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고 했나. ‘평창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문재인 대통령의 그 염원이 마침내 실현된 거 같아 감격에, 또 감격이다. 그런 가운데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 남북대화 재개다.

그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워싱턴의 시선은 차갑다. 2년여 만에 재개된 남북대화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연일 나오고 있다.

“북한이 놓은 덫이다.” 김정은의 신년사에 대해 미국외교협회(CFR)의 스콧 스나이더가 한 말이다. “트로이의 목마로 보아야 할 것이다.” 북한문제 전문가 고든 챙의 지적이다.

북한의 대남정책은 지난 70년간 변함이 없다. 어떠한 방법을 동원하든 남한을 예속시키는 거다. 김정은의 신년사를 통해 밝힌 대화용의 제스처도 그렇다. 위장된 평화전술 일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이를 덥석 받아들였다는 분석이다.

김정은은 왜 그러면 이 시점에 ‘트로이의 목마’를 보냈을까. 국제사회의 제재조치로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받고 있다. 그 자구책으로 한국정부를 노크 하고 있다. 일부의 분석이다.

“그 보다는 북한은 미국의 군사조치 위협은 단지 허세에 불과한 것으로 믿고 있다. 동시에 그런 미국과 한국을 갈라놓을 기회가 도래했다고 판단했다.” 싱크 탱크 지오폴리티컬 퓨처(GP)의 진단이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군사옵션을 시행할 경우 전쟁은 불가피하고 그 피해의 대부분은 한국이 입게 된다. 때문에 북한핵시설에 대한 미국의 선제공격을 한국은 원치 않는다. 충분히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공개적으로, 또 그것도 틈이 날 때 마다 그 같은 입장을 대내외적으로 천명해온 것이다. 동맹 간에 이 같은 이견이 발생할 때에는 사적인, 비공개적인 채널을 통해 반대의사를 전해오는 것이 관례다. 문재인 정부는 그 관례를 무시했다. 그 결과는 동맹 간의 깊은 불신으로 노정되고 있다.

여기서 더 나가 GP는 지난 11월17일 한국의 여당대표가 ‘전쟁은 있을 수 없다’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정면으로 공격한 것부터 시작해 지난 6주간의 문재인 대통령과 한국정부가 보여 온 움직임을 추적했다.

특히 주목한 것은 지난 12월14일 문재인대통령이 베이징방문에서 보여준 언행이다. 공동성명을 통해 미국의 북한에 대한 군사행동을 반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 그러니까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해 동맹인 미국에 등을 돌리고 중국과 같은 입장임을 대내외에 천명한 것이다. 그리고 뒤따른 것이 올림픽기간 중 한미군사훈련 중단에 남북대화요청이다.

이 일련의 움직임을 북한의 김정은은 어떻게 받아드렸을까. 한미동맹 이완의 호기가 왔다는 판단을 한 것이 아니었을까. 지오폴리틱스 퓨처의 진단이다.

김정은의 계획대로 그런 상황이 올 때 최대의 승자는 누가 될까. 중국이다. 중국과 북한 관계가 소원해진 것은 사실이다. 북한과 중국은 그렇지만 한 가지에서 이해가 일치한다. 한반도에서 미국을 몰아내는 것, 다시 말해 한미동맹을 붕괴시키는 것이다.

김정은의 궁극적 목표는 북한 주도의 한반도 통일이다. 그 통일을 막고 있는 것이 한미동맹이다. 중국은 동아시아에서 패권 국가를 지향한다. 그런 점에서 북한보다도 더 주한미군의 철수를 원한다. 주한미군철수만 이루지면 북한 핵은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 중국의 입장이다.

한국을 잃는다. 이는 물론 미국에도 타격이다. 그러나 한반도정세는 미국에게 전략적으로 절대적 중요성을 지니지는 않는다. 제한적이다. 주한미군, 혹은 한반도에 전략자산배치 없이도 미국은 아시아에서 힘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이는 그러나 아직은 가설에 불과하다. 아직 남북대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지도 않았다. 그리고 북한 핵 위기를 둘러싼 한반도 상황의 펀더멘탈은 바뀐 것이 하나도 없다. 때문인가. 2018년 한반도에서 발생할 여전히 유력한 시나리오의 하나가 군사충돌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그렇지만 불안한 구석이 없는 것도 아니다. 남북관계 악화와 한반도 위기의 본질은 북한의 핵에서 찾아진다. 문재인 정부는 그 본질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대화에만 매달린다. 본말이 전도된 느낌이다.

거기다가 ‘문재인의 사람들’은 북한 지도부의 의도나 향후 행보에 대해 ‘장밋빛 전망’을 쏟아내면서, 한반도 긴장의 원인이 한미 군사 동맹에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북 핵 폐기를 원칙으로 한 남북대화 기본을 무너뜨리면서 북한에게 면죄부만 주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는 뭘까. 미국, 더 나가 국제사회의 한국에 대한 불신만 깊어지는 것이 아닐까. 그 때 찾아오는 것은 ‘코리아 패싱’정도가 아니다. ‘코리아 왕따’다. 대화지상주의에 매달려 허둥대는 문재인 정부. 그 모습이 꽤나 위태해 보인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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