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둥글면 굴러 간다

2018-01-05 (금) 여주영 뉴욕지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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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리더들에게 끊임없이 읽혀 온 고전 중 ‘손자병법’이 있다. 손자가 춘추시대 제후들 간에 숱한 전쟁을 치르고 난 뒤 전쟁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담아낸 ‘손자병법’에 보면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이 들어있다.

전쟁을 부정하거나 반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철두철미하게 대비할 것을 요구하는 손자병법은 비록 전쟁에 관한 것이지만 치열하게 살고 있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옳을지를 잘 일깨우고 있다.

핵심은 ‘모나면 멈추고 둥글면 굴러 간다’는 것이다. 우리말에 ‘모나면 정 맞는다’는 말과 뜻이 통하는 말이기도 하다.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보내고 나니 둥근 해가 벌겋게 솟아오르면서 또 한해의 출발을 힘차게 알렸다. 사람들은 어둡고 암울했던 2017년 정유년을 뒤로 하고 다시 밝고 희망찬 무술년 새해를 맞으면서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하며 덕담을 주고받는다. 이들이 기원하는 복에는 주로 재물과 성공, 그리고 건강과 안녕을 염원하는 뜻이 담겨있다.

그런데도 벌써 새해 첫날부터 뉴욕 일원에 총격사건이 터지면서 사람들의 이런 바람을 짓밟고 있다. 물론 이 사건의 가해자는 성인은 아니지만 이런 총격사건은 이제 새해에도 어김없이 성인들 사이에서 또 발생하게 될 것이다.

이유는 주로 가족이나 친구 간에 혹은 동료나 이웃 간에 사소한 시비나 의견다툼으로 인해서, 미움과 증오감 때문에, 아니면 욕심이 지나쳐서 벌어지는 사건이다. 올 한해는 이런 이유들로 설사 큰 사건이 아니라 하다못해 작은 문제라도 발생하지 않도록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진다면 새해 가 좀 더 부드럽게 잘 풀리지 않겠는가.

물질이나 성공, 건강도 좋지만 우선 이런 자세부터 가져야 새해가 더욱 복되고 즐거운 한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무술년 새해에는 ‘모나면 멈추고 둥글면 굴러 간다’는 구절을 깊이 음미하고 살아간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살다보면 많은 사람들과 부딪치게 마련이다. 그 때마다 이 말을 떠올린다면 어떤 일에도 모가 나지 아니하고 사람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아 큰 문제없이 일도 술술 잘 풀릴 수 있을 것이다.

로마의 정치가인 세네카는 기록물에 자신이 당한 치욕을 크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현자들의 경험담을 적어놓았다. 세기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누군가에게 뺨을 맞고도 누가 “화나지 않느냐?”고 묻자 “나귀 발에 치어도 내가 고발을 해야겠느냐?”며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한 것이나,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이 누군가에게 뺨을 맞고도 큰 사건이 아니라고 하였던 것 등이다.

현자들의 이런 자세를 우리가 조금이라도 답습하면서 올 한해를 살아간다면 누군가 너 죽고 나 죽자 하는 식으로 덤벼든다 해도 얼마든지 원만하게 대처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것이 바로 우리가 험하고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겨나갈 수 있는 방법이자 지혜이다.

이를 잘 가르쳐주는 것이 또 노자의 도덕경이다. 노자는 인생을 살아갈 때 최상의 방법이 물과 같이 살아가는 것이라면서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상선에서는 부쟁(不爭)을 거듭 강조하며 작은 이익을 두고 누군가와 다투지 말라고 하였다. 물이 최고의 선인 이유는 물은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낮은 곳으로 흘러내려 만나는 모든 것을 배운다는 의미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즉 겸손과 지혜, 포용력과 유연성, 도전과 용기, 끈기와 인내 등을 두루 갖추고 있음이다.

새해 아침 힘차게 떠오르는 웅장하고 멋진 해를 바라보면서 어떻게 또 한해를 보내야 할까 생각해 보니 노자가 강조한 가장 높은 선, 바로 물과 같이 살라는 뜻을 떠올리게 되었다.

새해에는 흐르는 물처럼 모나지 않은 상선약수의 초연한 삶,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둥글게 굴러가는 삶을 살아보도록 노력한다면 올 한 해가 더욱 풍성하고 윤택한 날들이 되지 않을까.

<여주영 뉴욕지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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