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노년의 또 다른 복병, 파킨슨병

2017-12-16 (토) 천양곡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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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조심조심 천천히 걸음을 걷는데 이게 치매 초기증상이 아닌가요?”

얼마 전 골프 라운딩 중 한 지인이 물었다. 70대 중반인 그분은 몇달 전 부터 몸의 균형에 자신이 없어져서 계단을 내려올 때도 넘어질까 봐 손잡이를 잡아야 한다. 어머니가 치매로 돌아 가셨기에 혹시 자기도 치매에 걸린 게 아닌가 하는 염려에 밤잠을 설치는 날이 많다고 했다.

“잘 넘어지는 것을 치매 초기증상으로 찾아온 환자는 없었으나 혹시 기억력도 함께 떨어지는지 살펴보십시오”라고 대답했다.


세상에는 절대적 사실이 존재하지 않듯 절대적 의학지식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한밤 자고나면 의학 잡지에 새로운 연구결과가 나온다. 최근에는 네덜란드 대학 연구팀이 혈액 속의 마그네슘 양이 치매발생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발표했다, 그래서 환자나 주위사람들이 의학적 지식에 관해 물으면 항상 신중하게 대답하는 게 의사책무 중 하나다.

앞의 질문을 한 분의 가장 가까운 진단 가능성은 파킨슨병이다. 파킨슨병은 치매와 같이 나이가 들며 발생하는 대표적 만성퇴행성 질환으로 특정 영역의 뇌세포들이 정상적 노화과정보다 더 많이 더 빠르게 죽어가는 병리소견을 보인다. 노인 인구의 지속적 증가로 지난 10년 동안 발병률이 급격히 늘고 있다.

파킨슨 환자가 제일 먼저 보이는 증상은 손 떨림이다. 무언가 할 때는 괜찮은데 가만히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손이 떨린다. 좀 지나면 예전에 하던 모든 운동이 느려지기 시작하고, 누가 팔을 잡아당기면 저항 하듯 근육은 경직되어 있고, 균형이 잘 안 잡혀 자주 넘어지며, 양팔은 잘 움직이지 않고 보폭은 작게 아주 조심해서 걷는다.

자세도 구부정해지고 입과 혀의 근육이 경직되어 감정이 없는 스핑크스 얼굴 표정이 된다. 병이 더 진전하면 침 흘리기, 심한 변비, 저혈압, 음식 삼키기 어려움 등 자율신경계 증상들이 나타나 독립적 일상생활이 어렵게 된다.

파킨슨병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모른다. 환경요인인 과다한 살충제 사용, 대기오염과 타고난 유전성을 지목한다. 환자의 뇌를 사후에 검사하면 원인인지 걸과인지 알 수 없지만 환자의 대뇌 흑질에 신경전달 물질인 도피민이 크게 결핍되어 있다. 따라서 약물도 도파민 양을 높여주는 레보도파를 먼저 사용한다. 약물요법과 더불어 운동요법, 재활치료를 병행하며 이도저도 효력이 없으면 외과적 수술을 하기도 한다.

도파민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병이 진행하는 동안 망상, 환상을 보인다. 또한 흑질이 있는 대뇌 기저핵에는 세로토닌, 아세칠콜린 등 다른 신경물질들이 많이 분포 되어있어 우울증과 치매 증상을 포함한 신경정신과적 증상이 나타나 정신과 의사의 도움이 필요한 병이다.

요양병원에 입원한 70이 안된 파킨슨병 환자가 있었다. 치매증상은 없어 정신은 말짱했지만 음식 삼키는 게 힘들었다. 플라스틱 턱받이를 목에 걸치고 간병인이 먹여주는 죽과 국을 먹는 식사시간이 매우 괴로웠다. 요양병원 사정상 환자의 식사시간이 30분을 넘어서는 안 되기에 주어진 시간에 음식을 다 먹지 못해 배고픔을 호소했다. 가끔 가족들이 면회 와서 간식을 먹여주면 좋으련만 그렇지도 못했다.

어느 날 음식을 먹다가 음식물이 기관지 속으로 들어가 폐렴에 걸렸다. 병원에서 제공하는 항생제가 잘 안들어 2주일 만에 패혈증으로 번져 사망했다. 무슨 이유인지 가족들에게 버림받고 환자 치료보다 병원 수입에 열 올리는 의료시스템 부조리로 인해 젊은 노인 나이로 죽은 불쌍한 파킨슨 환자였다.

가까이 지냈던 대학선배 한 분, 그리고 대학동기 하나를 파킨슨으로 잃었다. 파킨슨병의 유전경향은 10% 정도밖에 안되기에 나이 먹으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병이다. 예전에는 파킨슨병 발병 후 5-6년을 넘기지 못했는데 지금은 좋은 약들과 다양한 치료법이 있어 평균 12년 정도는 살고 합병증이 없는 경우 자신에게 주어진 수명을 다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병에 걸렸다고 포기하지 말고 조기에 발견하여 조기에 치료하면 예후가 좋은 병이다.

<천양곡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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