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공동사회 금고’

2017-12-13 (수) 윤여춘 시애틀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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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TV에 나오는 문재인 대통령의 사진을 눈여겨보면 옷깃에 빨간 사과 3개 모양의 작은 배지가 달려 있다. ‘사랑의 열매’이다. 문 대통령은 최근 청와대 집무실에서 금일봉 봉투를 모금함에 넣어 연말연시 사회복지 공동모금 캠페인을 공식 킥오프 했고, 캠페인 홍보대사인 인기스타 채시라가 그의 옷깃에 첫 번째 사랑의 열매를 증표로 달아줬다.

대부분의 한인 1세들에겐 사회복지 ‘공동모금회’라는 단체가 생소하다. 1998년 11월 설립된 한국 유일의 법정 모금·배분 기관이다. 매년 11월20일부터 이듬해 1월31일까지 국민으로부터 성금을 모아 아동·청소년·장애인·노인·여성·다문화·지역사회 및 해외 등지의 민간 복지사업을 지원한다. 올해 모금 목표액은 3억6,000만달러(한화3,994억원)이다.

사회복지 공동모금회의 영어명칭은 ‘Community Chest of Korea’(한국 공동사회 금고)이다. 미국의 모금단체 원조인 Community Chest에서 따왔다. 커뮤니티 체스트는 1913년 클리블랜드(오하이오)에서 탄생한 민간 모금단체로 반세기만인 1963년 현재의 유나이티드 웨이로 개칭됐다. 한국 외에도 많은 나라에 커뮤니티 체스트가 설립돼 활동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사랑의 열매 모금함에 봉투를 넣으면서 “저는 주머니가 좀 두둑합니다”라고 농담했다지만, 그보다 몇 백배 부자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자선행위는 째째하기로 악명 높다. 그가 올 연말에 자선기관에 기부했다는 말은 못 들었다. 그가 내세운 지난 수년간의 기부금 내역이 거의 뻥이라고 폭로한 워싱턴포스트지가 올해 퓰리처상을 받았다.

올여름 휴스턴이 허리케인 ‘하비’에 휩쓸려 폐허가 되자 트럼프는 국민들의 성금운동을 독려하겠다며 모처럼 100만달러를 기부하고는 백악관 기자단에 분배기관을 추천하라며 생색냈다. 하지만 요즘 그는 오히려 기부문화에 찬물을 끼얹는 세제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공화당 법안이 확정될 경우 미국인들의 연간 기부금 총액은 49억달러 내지 130억달러가 줄어들 전망이다.

미국인들은 기부정신이 몸에 배어 있다. 지난해 기부한 금액이 총 3,900억 달러나 된다. 국민 1인당 평균 126달러 꼴이다. 실제로 총 기부액의 72%인 2,818억달러가 개인들의 십시일반 성금이었다. 전년보다 4%가 늘어났다. 기부가 자발적 선행이긴 하지만 대개는 세금공제 혜택 때문이다. 모금 캠페인이 세금보고를 앞둔 연말에 이뤄지는 건 그 때문이다.

지난 4반세기동안 미국의 최대 자선 모금기관으로 군림해온 유나이티드 웨이가 지난해 Fidelity Charitable에 밀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1991년 설립된 파이델리티는 기부자에게 즉각 세금공제혜택을 주는 한편 배분기관도 추천하도록 배려한다. 유나이티드 웨이가 십시일반 성금 위주인 반면 파이델리티는 최소 5,000달러 이상의 큰손 기부자들이 대부분이다.

한국일보 시애틀지사는 한국에 사회복지 공동모금회가 설립되기 훨씬 전부터 연말연시 불우이웃 돕기 성금 캠페인을 벌여오고 있다. 올해 31년째다. 기부자들에게 사랑의 열매 배지를 달아 주지는 못하지만 세금공제 혜택은 공여한다. 비영리기관으로 주정부에 등록한 덕분이다.

지난해엔 역대 최고액인 6만4,561달러가 모아져 불우동포 47명에게 공정 배분됐다. 올해도 어김없이 성금수표가 답지하고 있다. 하지만 매사에 화끈한 한국만은 못하다. 서울 광화문엔 ‘사랑의 온도계’가 세워져 있다. 올해 성금 목표액 3억6,000만달러에 1%가 채워질 때마다 온도가 1도씩 올라간다. 1월31일전에 100도를 칠 것이 뻔하다. 본보 캠페인은 목표액이 없다. 하지만 한인사회의 사랑의 열기도 100도까지 펄펄 끓었으면 좋겠다.

<윤여춘 시애틀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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