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아들을 위해 이민 길에 올라 우여곡절을 겪으며 열심히 살았어요...
▶ 이제 쌍둥이 할아버지가 되고 보니 지난 시간이 다 감사하기만 합니다”
1949년 강원도 영월에서 요즘말로 다문화 가정의 아들로 태어나 성장하기까지 참 힘들었어요... 내 아들들에게는 내가 겪은 설움을 주지 않기 위해 집 사람과 이민길에 올랐어요"
지나스 바베큐 한태호(69) 대표. (대표는 집사람이라며 자신은 배달부 역할만 하고 있다고 고집한다.) “푸짐한 인심으로 한끼 식사로 두 끼를 해결할 수 있다”는 ‘지나스 바베큐’는 하와이대학교 학생들은 물론 지역 주민들에게 입 소문이 난지 이미 오래다.
한 대표는 1983년 하와이로 이민 와 잠시 페인트 공으로 일하다 아웃리거 호텔에 취직하며 두 아들의 교육을 위해 전념했다.
"남들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설움을 자식들에게 물려 주지 않기 위해 하와이로 이민왔는데 정작 큰 녀석이 학교에서 남들과 다른 영어 액센트로 왕따를 당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가슴이 아팠습니다"
큰 아들은 청소년 사춘기 시절 고등학교를 다섯 번이나 옮기는 방황속에서도 아버지의 흔들림 없는 뒷바라지 덕분에 카피올라니 커뮤니티 칼리지 요리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한식과 로컬 음식을 접목한 지나스 바베큐 차세대 메뉴를 개발해 가며 28년 역사의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아웃리거 호텔 정원사로 일하며 호텔 오너 회장부부의 정원도 관리하게 되며 한 대표는 이민생활에 큰 버팀목을 얻게 된다. 근면, 성실하고 강원도 '촌놈'의 우직한 마음이 회장부부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인데 한 대표는 회장부부의 도움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은인으로 소개한다.
"살다보면 귀인을 만나서 인생의 고비에 큰 도움을 받는다고 하는데 저 역시 아웃리거호텔 켈리 회장 부부를 잊을 수 없어요. 그 분들 덕분에 작은 아들을 푸나후 학교에 보낼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두 아들이 제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큰 도움을 받았어요"
'밥 집 아저씨'의 넉넉한 인심으로 그가 몸담고 있는 단체들을 챙기고화목을 다지는 한 대표는 2003년 '한인회 정상화' 3인방으로 활동하며 한인사회에 본격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한 대표는 21대 한인회가 출범하기 전 까지 5-6년 한인회와 문화회관건립추진위원회, 그리고 민주평통위원으로 정말 열심히 일했다고 자부한다.
"지금 생각해 보니 지나스 바베큐를 운영하고 있는 집사람의 '알고도 모른 척' 하는 속깊은 내조가 있어 내가 마음껏 일 할 수 있었다"며 "그 당시에는 집 사람이 모른다고 생각하고 비자금을 챙기며 단체활동을 하느라 힘들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나름 보람도 있었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21대 한인회가 출범하며 19,20대 한인회, 문화회관건립추진위원회 활동은 한 순간에 폄하되며 동포사회 입 방아에 오르내리기 시작했고 '집사람'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한 대표 스스로도 너무 화가 치밀어 모든 공직에서 사퇴하고 그야말로 열심히 지나스 바베큐 배달부 역할에 전념했다. 그러나 지난 해부터 하와이 한인문화회관건립추진위원회 이사로 올해 민주평통위원으로 다시 복귀했다.
그 이유에 대해 한 대표는 "두 아들이 결혼해 손자 손녀를 안겨주며 자신들의 길을 제대로 찾아가는 모습을 보니 이제 저도 못다한 일을 마무리 짓고 싶어 한인사회를 위해 작은 힘을 보태고 싶어졌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지난 9일 열린 한국의 맛 행사장에서 만난 한 대표는 쌍둥이 손자, 손녀를 소개하며 "이 녀석들에게 할아버지도 함께 한 한인문화회관을 물려 주고 싶다"는 소망을 전한다.
한 대표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공도 모르고 불평 불만만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야속하다"며 그동안 쪼개진 하와이 한인사회 민심이 다시 하나가 되어 내년 미주한인이민115주년을 맞아 새로운 하와이 한인사회 역사의 전환기를 만들어 갈 것을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