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섬‘비밀의 정원’에서 본 불타는 노을. 고흥 외나로도 앞 쑥섬은 겉보기엔 평범하지만 탐방로를 걸을 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모여주는 보물섬이다.
외나로도 앞바다에 핀 서홍구절초.
반전의 시작은 대나무 숲 오솔길.
비단 섬 나로도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이름이다. 근사한 수사나 비유 없이 직설적이고 소박하다.
고흥 외나로도항 바로 앞에 위치한 쑥섬을 다녀왔다. 날것의 적나라함이 좀 ‘거시기’했던 걸까, 행정지명은 쑥섬을 한자어로 옮긴 애도(艾島)다. 하지만 이렇게 불린 건 20년도 되지 않았다. 인진쑥보다 좋다고 자부하는 쑥이 쑥쑥 자라는 섬, 주민들에겐 여전히 쑥섬이 친근하다. 관광사업 명칭인 ‘쑥섬쑥섬’은 섬의 정체성을 헤치지 않으면서도 리듬을 살렸다.
원시림, 비밀정원, 황홀한 일몰
외나로도항에서 도선에 오를 때까지만 해도 기대가 크지 않았다. 겉보기에 쑥섬은 아담하지도 예쁘지도 웅장하지도 않은 평범한 섬이다. 바위산이 우뚝 솟은 바로 옆의 사양도에 비하면 오히려 초라하다. 13가구 30여 주민이 이용하는 작은 포구도 여느 어촌과 크게 다르지 않다.
포구에 어슬렁거리는 ‘길냥이’를 따라가자 갈매기 두 마리로 장식한 ‘양심 돈 통’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꽃 정원, 탐방로, 원시림, 마을 가꾸기에 쓸 용도로 ‘양심껏’ 한 사람에 5,000원을 넣으면 된다. 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은 하얀 ‘갈매기 카페’다. 갈매기가 알을 품은 형상으로 지었다는데, 몸집은 어째 오리보트다. 음료는 마시지 않아도 되지만 섬에서 화장실에 가려면 꼭 들러야 한다.
탐방로는 카페 뒤편에서 시작한다. 몇 계단 오르니 대나무 오솔길로 이어진다. 예상하지 못한 아늑함이다. 사실 2km가 못 되는 탐방로 곳곳이 반전의 연속이다. 대나무 숲을 통과하면 후박나무 육박나무 푸조나무 등이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빼곡하다. 한겨울에도 늘 푸른 난대 원시림이다. 마을 주민들의 단체사진 아래에 ‘400년 만에 개방하는 신성한 숲이니 소중히 아껴달라’는 당부의 안내문이 붙어 있다. 태풍 매미와 볼라벤으로 쓰러진 아름드리 통나무도 그 자리에 자연스럽다. 동백나무 군락을 마지막으로 ‘할딱고개’에 올라서면 섬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능선너머 넓게 펼쳐지는 바다 끝자락에 소거문도 손죽도 초도가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고, 왼편 쑥섬 끝자락 바위절벽에는 파도가 부서진다. 여기서부터는 본격적인 능선길이다. 바닥을 덮은 덩굴식물이 돈나무 소사나무 군락을 타고 올라 어디나 푸르름이다. 이 작은 섬에 500여종의 나무와 30여종의 야생화가 자라고 있다니 식물도감이나 마찬가지다.
섬의 허리춤에 다다르면 꾸민 듯 꾸미지 않은 비밀의 정원이 나타난다. 나비바늘꽃 미니백일홍 메리골드 서홍구절초 등 화단에서 기르는 꽃과 억새 여뀌 등 자생하는 풀이 어우러진 ‘별정원’이다. 산정에서 내려다보는 안팎의 풍경은 별보다 반짝거린다. 외나로도와 사양도 사이 잔잔한 바다는 호수처럼 평화롭다. 쑥섬이 봉호도(蓬湖島)라는 다른 이름을 가진 이유이기도 하다. 섬의 북쪽 끝 등대까지는 크지 않지만 제법 험한 바위 사이를 오르내리는 길이다. ‘쑥섬 정상(해발 83m)’ 표지판은 패기가 넘친다. 에베레스트 백두산 한라산 높이도 함께 표기하고, ‘별 차이가 없군요^^’라며 애교를 날린다.
능선 반대편 바다 건너에는 고흥반도 끝자락에서 떨어진 크고 작은 섬들이 가느다랗게 이어진다. 때마침 섬들 사이로 해가 떨어지고 바다와 하늘이 벌겋게 물들었다. 꽃잎을 살랑거리는 바람, 이따금씩 금빛 바다를 가르는 고깃배까지 환상적인 일몰 풍경이다. 노을은 섬 그림자를 남기며 사그라지고 그 자리에 완벽한 고요와 평화가 번진다.
비밀의 정원에서 마을로 내려서자 돌담길에 내려앉은 어스름이 포근하다. 포구로 나가는 길에 ‘양심 돈 통’이 다시 한번 눈에 들어온다. 과하다 생각했던 5,000원이 아깝지 않은 보물섬이다.
쑥섬을 키운 건 어머니 사랑과 외할머니와 약속
어머니는 정신연령이 8~12세에서 멈춘 지적장애인이었다. 그럼에도 공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네 형제를 남부럽지 않게 키워냈다. 어머니로서, 또 한 여인으로서 그 애틋한 삶이 가슴에 사무쳤다. 외나로도 주민들의 도움도 마음의 빚으로 남았다. 쑥섬이 고향인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눈을 감는 순간에도 어머니를 끝까지 돌봐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는 대학시절과 군 생활을 제외하고 고흥 땅을 떠나 본 적이 없다. 고흥백양중학교 국어교사인 김상현(49)씨가 ‘쑥섬지기’를 자처하고 섬을 관광지로 가꾸고 있는 이유다.
모든 일은 부인 고채훈(46)씨가 함께했기에 가능했다. 너도나도 밀레니엄 계획을 세우던 2000년, 그와 부인이 각각 적은 15개 인생 목표에서 1순위가 일치했다. 바로 ‘사회에 기여하는 삶을 살자’는 것이었다. 지역 주민들에게 보탬이 되고자 어릴 적 추억이 남은 쑥섬을 가꾸기로 했다. 섬에 거주하는 주민뿐만 아니라 전국에 흩어진 30여명의 출향민을 찾아 설득하는 과정에서 ‘땅 장사냐, 브로커냐, 무슨 개발 정보라도 들었냐’는 오해도 받았지만, 마을을 제외한 대부분의 섬 땅을 사들여 언덕으로 산책로를 내고 칡덩쿨이 뒤덮인 묵은 밭을 정원으로 꾸몄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조금씩 관광객이 늘면서 지난해에는 마을발전기금으로 500만원을 기부할 수 있었다. 섬의 쉼터 역할을 하는 ‘갈매기 카페’는 마을부녀회에 운영을 맡겼다. 평시에는 무인카페로 운영하지만 예약하면 주민들의 손맛이 담긴 식사도 할 수 있다. 쑥섬 여행에서 가장 불편한 점은 접근성이다. 외나로도항에서 하루 5차례 도선이 운항하는데, 일몰을 보고 나면 정기 배편이 끊겨 낚싯배를 빌려야 한다. 전용관광선이 운항하는 내년 4월까지는 어쩔 수 없는 실정이다.
쑥섬의 산책로와 정원엔 유명관광지를 도배한 ‘돈 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 흔한 목재 산책로도 없어 깔끔한 것만 찾는 여행객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다. 중장비를 들이고 사람을 쓴다면 한 달도 걸리지 않을 공사에 부부는 17년을 쏟았다. 그 땀과 정성에 느린 시간이 보태져 섬은 최대한 평온하고 자연스럽다. 상현씨가 섬에서 가장 아끼는 물건은 산 정상 부근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나무다. (팽나무인지 폭나무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숲과 정원에서 차분히 자신을 돌아보고 용기와 위안을 얻어 가는 여행지로 기억됐으면 좋겠습니다.” 쑥섬은 이미 충분히 그런 섬이다. 편의와 수익만 앞세운 시설이 더 들어서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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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최흥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