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드 자카리아/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CNN‘GPS’ 호스트예일대 졸, 하버드대 정치학 박사
미국의 뉴스와 해설이 온통 도널드 트럼프의 농간과 모역적인 언사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 지구 건너편에서는 참으로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중국이야말로 미국의 맞수이자, 미국을 대체할만한 위치에 서있는 세계의 또 다른 수퍼파워라는 시그널이 나온 것이다.
이건 내가 뽑아낸 중국 정치의 점괘가 아니다. 중국 최고지도자인 시진핑이 똑 부러지게 밝힌 견해다. 지난주 19차 공산당전국대표대회에서 행한 연설에서 시진핑은 중국이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는 “역사적 시점”에 서있다며 “이제 우리는 세계의 강력한 힘이자, 정치와 경제 발전의 롤 모델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시 주석은 중국의 “정치 시스템은 다른 국가들에게 새로운 선택을 제공하는 위대한 창조물”이라고 역설하고 “우리는 온 힘을 다해 국가이익을 방어할 것이나 기후변화와 교역과 같은 이슈에 대해서는 글로벌 리더의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1970년대에 마오쩌둥의 고립주의 노선을 포기한 이후 중국의 국가지도이념은 덩샤오핑에 의해 정립됐다. 중국은 서구, 특히 미국으로부터 배워야하며 기존의 국제질서에 통합되어야 한다는 것이 새로운 지도이념의 골자였다. 당시 덩샤오핑은 “우리의 외교정책은 겸허하고 온건해야하며, 중화의 빛을 감추고,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바로 그 ‘때’가 왔다는 것이 시 주석의 판단이다. 그에 따르면 “중원의 왕국은 이제 세계의 중앙무대를 차지할 준비가 되어있다.”
시 주석의 연설이 중요한 이유는 공산당전국대표대회에서 그가 평범한 지도자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그는 당 관리들 가운데 확실한 차기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은 채 집권 2기에 돌입했다. 직전 선임자들에 비해 훨씬 강력한 권력을 장악했다는 뜻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당이 그의 사상을 헌법에 반영한 것이었다. 살아있는 동안 이 같은 영예를 누린 지도자는 이제까지 마오쩌둥 단 한명에 불과했다.(덩샤오핑의 사상도 사후에야 헌법에 추가됐다.) 이는 그의 남은 생애 동안 시 주석과 그의 아이디어가 중국 공산당을 지배할 것임을 의미한다.
‘뉴욕 리뷰 오브 북스’ 최근호에서 앤드류 네이던은 “시간이 흐르면 중국은 경제 현대화와 함께 보다 다원적인 국내정책을 추구하고, 대외협력을 강화할 것이라는 일반적 가정이 서방의 대 중국 정책 기조였다고 말했다. 네이든은 “그러나 제임스 만과 같은 소수의 작가와 언론인들은 중국이 권위주의적 체제를 유지할 것이며 다른 반민주 국가들에 지원을 제공할 것으로 우려했다”고 덧붙였다.
현실은 만이 전망했던 것처럼 극단으로 치우치지는 않았다. 중국은 아직도 결연히 권위주의 체제를 고수하고 있고, 최근 수년간 이 같은 체제가 강화된 게 사실이다. 그러나 기후변화, 무역과 북한과 같은 이슈에서 실제로 이전보다 훨씬 협조적이 되었다. 자체적으로 몇몇 대체 국제기구를 세우려고 시도했지만, 현재 유엔의 회원국들 중 세 번째로 많은 기부금을 내고 있고 유엔평화유지군 예산 기여도는 2위를 달린다. 중국은 서방이 구축한 국제질서의 변혁이라든지 대대적인 대체를 추구하기보다 날로 커지는 자국의 국력을 수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국제시스템을 개정하길 원한다.
세계를 향한 중국의 새로운 입장과 그것이 받아들여지는 방식은 부분적으로 중국 경제의 지속적인 힘과 시진핑의 지도 아래 급증한 정치적 자신감의 결과다.
그러나 이런 변화들은 미국의 정치적, 도덕적 권위의 완전한 붕괴를 배경삼아 진행되고 있다. 최근 퓨 리서치 센터가 30여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서베이는 미국에 대한 호감도가 평균 14포인트 하락했음을 보여준다.
호주, 네덜란드와 캐나다는 미국보다 중국에 호감을 갖고 있다. 독일, 칠레와 인도네시아를 비롯, 서베이에 참여한 국가들은 트럼프보다 시진핑의 지도력을 신뢰한다.
중국은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해외지원금을 지출하고, 교역과 투자 확대를 약속하는 한편 중국 문화 소개를 위한 공자학교를 개원 하는 등 국제사회에서 국가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해 공격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제 미국이 세계의 다른 국가들에 어떤 모습으로 비쳐질지 살펴보자. 미국은 정치적으로 마비된 상태라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없다. 부채가 급속히 팽창하고 있는 가운데 교육, 사회기반시설, 과학과 테크놀로지 분야의 투자는 심각할 정도로 부족하다. 모욕주기와 설전, 욕설이 난무하는 정치는 리얼리티 TV의 곁가지로 전락했고 미국이 행사해온 세계무대에서의 지도적 역할은 편협한 이념으로 대체됐다. 워싱턴 정부가 국내 유권자들로부터 정치적 점수를 따내기 위한 목적으로 멋대로 협정을 파기하고, 수시로 방향을 바꾸며 거의 완전히 정책을 번복함에 따라 외교정책은 편파적인 게임이 되어버렸다.
우리가 지구촌 곳곳에서 목격 중인 평판의 이동은 미국의 쇠퇴에 기인한 것이라기보다는 중국의 성장에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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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CNN‘GPS’ 호스트예일대 졸, 하버드대 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