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마추어가 보는 미국역사 (180)제2차 세계대전과 FDR 대통령 ⑧

2017-10-27 (금) 조태환/LI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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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어려움이 닥쳐오면 외국인, 새 이민자나 특정소수 민족이나 인종에게 문제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며 박해를 하는 나쁜 전통이 있는 나라이다. 일찌기 제2대 John Adams 대통령 때부터 법률로써 힘도 없는 약한자들을 “국가안보”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괴롭혔던 버릇은 간혈적으로 계속되고 있는데 최근에도 Trump 대통령이 새롭게 인종, 국민화합 등의 문제들을 불결한 손으로 긁어서 부스럼을 시작해 일부 미국인들의 천박한 본능을 자극하고 있으며 외교적인 무례와 막무가내의 비타협적인 언동을 함으로써 국제적으로 미국의 신고립을 자초하고 있다.

미국의 국제정치상의 위상과 미국대통령의 권위가 한꺼번에 몹씨 쪼그라 들고 있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다. 미국민들중 많은 사람들은 당대나 선대, 오래되어 봤자 3대전에 “이민”온 사람들이지만 먹은밥 그릇수로 고참을 따지는 군대처럼 텃세가 아주 심한 나라이다. 원래는”미국”인도 아니고 “인도인”은 더군다나 아닌 진짜 터줏대감인 미국원주민을 “미국의 인도인” 이라고 누명을 씨워가며 토벌했거나 폭력을 써서 몹쓸 땅으로 다 쫓아낸 다음 더러는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저보다 하루 늦게온 사람들에게 “You go back home” 이라고 허세를 부리는 것을 보면 가소로울적이 많이 있다.

그래서 미국에서 우리도 기죽지 않고 살려면 미국역사를 조금 공부해 두어야 한다. 그런 무례한 사람에게는 “I will go back if you go first!” 라고 대답해 주어야 한다. “Yankee go home!” 은 제2차 세계대전후 “ugly American” 들에게 많은 나라 사람들이 했던 얘기가 아니라 아마 원래는 미국원주민들이 “굴러들어온 돌멩이인 백인”들에게 했던 말이었을 것이리라고 생각한다.


미국역사상 차별받고 천대받은 대상들은 열손가락으로는 다 셀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그중에 별소문도 없이 천대받은 사람들에는 아시아인들도 포함되며 아마 아시아인들은, 그중에서도 중국인들은, 미국원주민, 흑인노예 다음쯤으로 천대받은 사람들이라고 생각된다.

운하를 파느라고, 대륙횡단 철도를 건설하느라고 독일인, Scotland 인, Irish 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병들어 죽고 얼어죽고 사고로 죽은 중국인 “꾸리”들은 수천년을 미국에서 살아온 American Indian (원주민)들처럼 1950년대에 이르기까지 “미국시민권”을 받지 못하고 San Francisco 에서 또 New York 의 China Town 이란 곳들의 그늘에서 살아오고 있었다. 차별대우에 대해서 한번도 항의할 줄도 모르는 “모범시민” 으로서….. 근래의 우리 동포 이민자들이 이민전 학력, 경력들이 높고 다소의 seed money 를 쥐고 왔던 것에 비하여 중국의 꾸리들은 광동성(Canton) 에서 바닥생활을 했던 사람들이 던 까닭도 있었겠지만 1980년대까지 중국계의 뉴욕시 벼슬아치중에는 ChinaTown출신 시의원 한명 밖에 없었었다.

“국가안보”를 위해 WW II 중 강제수용된 일본계 ‘미국시민’ 11만명동양인들 중에서는 일본 이민들이 가장 먼저 자리잡고 성공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아시아 국가중에서 가장 먼저 서구화하고 세계가 인정하는 강국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던 나라를 모국으로 두었던 덕택을 일본인들은 아주 많이 보았으리라고 생각된다. 일찌기 Hawaii 로 대거 이민해서 성공적으로 정착을 하였었고 1900년대 초부터 California 로 농업이민들이 많이와서 급속히 일본인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눈에 띌 정도로 경제적으로 성공해 나갔다. 일본이민들은 그들을 경쟁과 질시의 대상으로 보기 시작한 미국인들의 배척을 받기 시작하였고 각급 공무원들, 특히 연방 상하의원들은 주민들의 불평을 듣고 대통령에게 일본인 이민금지등 일본이민들을 박해하는 정책과 법률들을 제정하도록 압력을 주고 있었다.

1941년 12월 7일에 일본은 진주만을 공격하였다. 평화협정을 가장해서 외교관들을 백악관에 보내놓고 그시간에 기습을 감행한 일본의 간교함에 치를 떨었던 미국사람들은 “볼모”로 잡힌 꼴이된 미국에 있는 일본인들과 일본계 “미국시민”들에게 “앙갚음”을 하게 되었다. 이들이 진주만공격에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 “선량한 미국시민”들이 었다는것 같은 점은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일찌기 미국은 전국 각지의 미국 원주민들을 강제로 Oklahoma 등지에 이주시켜서 수용시켜 버렸던 부끄러운 역사가 있는 나라이다. FDR 은 1941년말에 진주만 기습까지 받고나자 California 등 서부지역출신 정치인들의 압력을 더 버티지 못하고 1942년초에 California 주를 위시로 태평양 연안의 여러주들에 살고 있던 일본인들과 일본계 미국시민들을 “국가안보”를 위해서 전부 강제수용 시키도록 하였다. 미국역사상 두번째로 부끄러운 기록이었다. 사실은 일본보다 더 심한 적대국들인 독일계와 이태리계의미국시민들 에게는 비슷한 조치를 거의 취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일본계 미국시민들의 강제수용은 분명히 인종차별적, 민족차별적 처사이었다.

California 등 태평양 연안의 지역에 있던 모든 일본인들과 일본계 미국시민들 11만 여명은 아주 짧은 기간동안에 살던집과 사업을 큰 손해를 보며 황급히 정리한후 강제수용소들로 집단 수송되었다. 수용소는 무장한 경비원들이 감시하였다. 이 수용소 생활은 1944년 11월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얼마후까지 계속 되었었다. 미국 역사상 전무후무했던 조치로써 양식이 있는 미국사람들은 지금도 부끄러워하고 있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가 한가지 주목 해야할 점은 앞으로도 Trump 같은 대통령이 몇번 계속해서 당선 되어서 미국민들의 이성을 잃은, 편견으로 가득찬 동물적 본성을 자극하는 여론몰이에 성공한다면 “Japanese Internment” 같은 일은 별로 어렵지 않게 반복될수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동양인들이, 소수 민족들이 정치력을 빨리 신장해야만 하는 이유를 우리는 미국역사에서 꼭 배워야 한다.

그런데 한가지 놀라웁지만 애처러웠던 사실은 멸시를 받으며 수용소에 살고 있던 일본계 젊은이 1,200명이 미군에 자원입대하여 이태리에서 일본인부대로 참전하여 아주 영웅적으로 전공을 올렸었다는점이다. 일본인들이 너무 많아 강제수용을 할수 없었던 Hawaii 에서도 일본인 지원병대대가 창설되어 전쟁에 참여 했었다고 한다.


일본인들에 대한 불법적인 차별대우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인종문제에 대한 정책은 다른 여러나라들의 인종차별 기록보다는 더 낳았었던 것이라고도 하며 미국자체의 WW I 때의 경험보다는 훨씬 더 개선된 것이었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은 미국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정치, 사회, 경제에 중대한 변화들이 생기도록 하였다. 미국은 참전으로 많은 전사상자들이 났었지만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근소한” 편이었다. 전쟁중 연합국들의 군수품들을 “독점조달” 했었지만 그결과로 미국의경제는 활성화 되어서 대공황을 완전히 졸업하고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부유국, 강대국이 되었다. 유롭과 일부 아시아 국가들이 전화로 초토화되고 있을때 미국은 진주만 기습을 제외하고는 자국땅에는 포탄 한발도 맞아 본적이 없었다. 막말로 미국은 WW II 의 “혜택”을 톡톡히 본 나라라고도 얘기할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엄청났던 전비부담을 어떻게 조달했으며 급격한 경기호황에 반드시 따라오는 inflation 과 경제부조리를 어떻게 대처 했었는지 짧게 살펴보기로 하자.

<조태환/LI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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