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못난 사과’

2017-10-24 (화) 12:00:00 조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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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 사과’

박영구,‘Reminiscence-clouds’

못나고 흠집 난 사과만 두세 광주리 담아 놓고
그 사과만큼이나 못난 아낙네는 난전에 앉아 있다
지나가던 못난 지게꾼은 잠시 머뭇거리다
주머니 속에서 꼬깃꼬깃한 천 원 짜리 한 장 꺼낸다
파는 장사치도 팔리는 사과도 사는 손님도
모두 똑같이 못나서 실은 아무도 못나지 않았다

조향미 (1961- ) ‘못난 사과’

예쁘게 잘 생긴 사과는 예쁜 박스에 포장돼 팔려나가고 흠집 난 못난 사과는 못난 아낙네의 광주리에 담겨 난전에 나앉았다. 지나가던 지게꾼이나 사가는 못난 사과. 이 투박한 풍경에 시인의 눈길이 닿자 풍경은 따스한 정경으로 변한다. 모두들 잘나고자 허둥대는 세상에서 비껴서, 스스로에 충실한 못남은 오히려 눈부시지 않는가.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사과를 사며 지게꾼의 가슴은 설레였을까? 사과 때문에 아니면 아낙 때문에? 겉만 번지르르하게 진화된 사회가 부끄러워지는, 그래서 그리워지는 착한 풍경이다. 임혜신<시인>

<조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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