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진핑 “쓴 열매 안 삼킬 것” 외교 기조…韓中 사드갈등 어디로

2017-10-2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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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중관계, 미중관계에 종속심화 예상…中’신형국제관계’ 행로 주목

▶ 中, 도광양회·유소작위 벗어나 분발유위(奮發有爲) 지향할 듯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제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 업무보고에서 '신형 국제관계' 구축 의지를 선언한 가운데 집권 2기의 외교노선에 관심이 쏠린다.

시 주석이 17일 업무보고에서 쏟아낸 외교 관련 메시지는 여러 갈래다.


우선 "상호 존중과 공평·정의, 협력·상생에 기초한 '신형 국제 관계'의 구축을 추진할 것"이라면서 "냉전과 강권 정치를 버리고 대항이 아닌 대화, 동맹이 아닌 동반자로서 새로운 교류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강조한 대목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로 볼 때 시 주석의 신형 국제관계 메시지는 공존공영 의지를 비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시 주석은 "그 어떤 나라도 중국이 자신의 이익에 손해를 끼치는 쓴 열매를 삼킬 것이라는 헛된 꿈을 버려야 한다"며 "중국은 타국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대가로 자국의 발전을 도모하지 않겠지만 자신의 정당한 권익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여기에선 적어도 중국이 현재 갈등·대립 중인 외교·안보 분쟁에서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속내가 묻어난다.

시 주석은 이어 "각국 국민이 스스로 발전의 길을 선택할 권리를 존중하고 국제적 공평과 정의를 수호하며 자국의 의지를 타국에 강요하는 것과 타국의 내정에 간섭하는 것, 강대국이 약소국을 깔보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중국은 방어적 국방정책을 고수하고 중국의 발전이 어떤 나라에도 위협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며 "중국이 어떻게 발전하든 영원히 패권을 추구하지 않고 확장의 길도 가지 않겠다"고도 했다.

중국은 전체 대외관계 기조를 '인류 운명공동체', '평화 외교'에 방점을 찍으며 2050년까지 종합국력과 국제영향력에서 세계를 이끄는 최강국이 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시 주석이 이끄는 중국은 정반대로 지난 5년간 이웃 국가를 힘으로 누르려 하면서 분쟁도 불사하는 외교안보 전략을 펼쳐온 게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로 미뤄볼 때 중국은 시진핑 집권 2기 들어, 적어도 외교적 수사로는 '신형 국제 관계'를 천명했으나 기존의 미중 외교·안보·무역 갈등은 물론 중일 영토분쟁,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 등에서 기존 입장을 바꿀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아울러 작년 말 주한미군의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이후 조성된 한중 양국의 갈등과 대립 사태가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불러일으킨다.

시진핑 집권 1기 5년을 돌아보면, 향후 5년의 밑그림도 대충 그려진다.

시 주석은 2012년 말 18차 당대회 이후 집권하면서, 그 시기에 세계 경제의 침체기 속에서 국가 개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중국 경제 성장을 견인하면서, 그와 동시에 국제무대에서 중국의 외교·안보 입지를 키우는데 주력했다.

시 주석은 외견상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구상, 공정하고 합리적인 국제관계, 인류 운명공동체 구축론 등으로 외교기조를 강조하면서도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를 상대로 '신형 대국관계'를 집요하게 요구했다. 중국이 미국에 버금가는 주요 2개국(G2)으로 성장한 만큼, 그걸 인정하라면서 영향력 확대에 나선 것이었다.

다시 말해 중국은 국제질서의 재구축을 주장하면서, 개발도상국의 발언권과 참여를 늘리는 것을 명분으로 미국의 세계 패권 지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올해 초 임기를 시작한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중국의 '신형 대국관계' 요구를 무시하자, 중국은 이제 '신형 국제 관계'라는 대외정책 기조를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덩샤오핑이 '군대는 인내해야 한다'(軍隊要忍耐)며 제시한 도광양회(韜光養晦·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힘을 키운다), 유소작위(有所作爲·해야 할 일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뤄낸다)라는 외교 방책은 폐기된 듯하다.

뉴쥔(牛軍)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지난 5년간 대외정책의 가장 큰 특징은 지도노선에 뚜렷한 변화가 발생했다는 것"이라며 "과거의 도광양회가 유소작위로, 다시 분발유위(奮發有爲·분발해 성과를 이뤄낸다)로 변했다"고 말했다.

뉴 교수는 "중국의 종합국력이 예상보다 빨리 증강됨에 따라 보수적인 과거의 노선을 바꿔 새로운 외교정책과 국제질서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중화권 매체들의 보도를 종합해보면 시진핑 시대의 기존 대외관계는 세계 100여개국과 각각 서로 다른 '글로벌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고 각국과 상호이익의 교차점을 확대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중국 외교는 미국·러시아·유럽 등과의 대국(大國) 관계, 한국·일본 등과의 주변 선린외교, 그리고 아프리카·남미·중동 등 개발도상국과의 협력 외교 등 3급으로 구분되고 있어 보인다.

시 주석이 19차 당대회 업무 보고에서 "대국과는 조율과 협력으로 총체적으로 안정·균형적으로 발전하는 구도를 구축하고, 주변 인접국과는 '친성혜용'(親誠惠容·친밀·성의·호혜·포용) 원칙에 따른 선린 동반자 관계를 심화하며, 개도국과는 연대와 협력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힌 데서도 이런 구분법이 드러난다.

문제는 중국의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 외교가 미중 관계의 하위 개념으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국제질서의 재편을 추구하는 중국이 대미 관계에 치중하게 되면서 동북아·동남아·서남아 주변국 상대 외교는 종속변수가 됐다는 것이다.

한중 사드 사태가 대표적이다. 중국은 사드의 한반도 배치가 미국이 자국의 전략안보를 위협하는 사안이라고 간주하면서도 정작 보복 조치는 한국을 상대로 취했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에서 중국의 입장이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는 이유 또한 중국이 항상 미국을 염두에 둔 국제질서 재편 전략을 고려한 때문으로 해석된다.

이외에도 중국이 주변국과의 갈등·대립하는 문제와 관련해 자국의 '핵심이익'을 명분으로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 일이 다반사가 됐다.

일본이 2012년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열도를 국유화한 조치에 대해 중국은 "영토주권 침해"라며 관계를 험악하게 이끌었다. 필리핀 정부가 2013년 제기한 남중국해 영유권 중재 결정에 대해서도 중국은 한 치 물러서지 않고 미중간 군사적 대립까지 불사했다.

인도와도 최근 히말라야 산지에서 도로건설 문제로 2개월가량 무장 대치하기도 했다. 사방이 중국과 편치 않은 관계가 된 것이다.

중국이 주변국을 상대로 경제 정책적 수단으로 보복 조치는 물론 군함·전폭기·해경선 등을 확대 파견해 군사적 압력을 가하는 일도 많다. 주변국들과의 관계 경색에 전혀 거리낌이 없다.

시진핑의 중국이 이처럼 강경 일변도로 가는 데는 중국 내 국수적 애국주의 풍조가 자리 잡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시진핑 집권 2기에 중국의 이런 대외전략이 바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황쿠이보(黃奎博) 대만 정치대 국제사무학원 부원장은 대만 중앙통신에 "지난 5년간 중국은 대외개방 확대를 통해 충분한 정치경제 실력을 축적했고 앞으로도 경제력을 통해 외교발언권을 키우며 국제 주도권을 높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 당위원회는 지난달말 공산당 이론지 구시(求是)에 '중국 특색의 대국외교 개척'이라는 글에서 "시진핑 동지의 영도로 중국은 국제적 위상과 영향력을 제고하며 기존의 전통 대국과는 다른 '강국의 길'을 성공적으로 걷고 있다"고 평가했다.

황제정(黃介正) 대만 단장(淡江)대 국제전략연구소 교수는 "시진핑이 패권 추구나 확장 노선을 취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중국 국력의 급격한 신장세에 가장 필요한 외교적 과제는 바로 자신의 자제력"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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