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관목 치는 법에 대한 충고’

2017-10-19 (목) Jeff Coomer
작게 크게
소란스럽게 들어서
서당신이 온다는 것을 온다는 걸 알려야 해요.
토끼와 사슴들은
당신이 오는 것을 알고 떠날 테지만
하지만 뱀은 시간이 필요하죠당신의 의도를 파악할

무엇을 자를 것인지
잘 생각해 봐야 해요
땅에 가까이 있는 줄기들은
서로 비슷비슷하거든요
어린 것들은 더 그렇죠
그래서 간간 올려다봐야 해요.

야생장미가 당신의 얼굴과
팔을 후려치고


인동나무 줄기가 발을 휘감고
손에든 전지가위를 끌어당겨도
못마땅해 하지 말아요
당신이라도 그랬을 거니까요
그냥 인정하고 말끔하게 쳐 주세요

화가 났을 때는 절대
일을 시작하면 안 된답니다
그러면 쉬지도 않고 모조리
다 쓸어버리게 될 테니까요
뿌리내리지도 못하게

항상 장갑을 껴야 해요
그리고 칼날에서 눈을 떼지 말아요

Jeff Coomer ‘관목 치는 법에 대한 충고’ 임혜신 옮김

토끼, 사슴, 뱀들이 살고, 덩굴꽃이 발목에 감겨오는 관목 숲은 작은 정글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천적이며 생명의 원천이기도 한 이 정글은 자연계이며 인간사회이기도 하다. 그 정글로 전지가위를 들고 들어서는 이에게 시인은 충고한다. 자른다는 부정적 행위를 상생의 인연으로 상향조정하기 위한 필요조건들이다. 먼저 비밀스러워서는 안 된다. 그리고 상대를 인정하고 또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함께 살기의 기본 원칙이다. 그 현실적 충고가 관목 숲처럼 푸르다. 임혜신<시인>

<Jeff Coo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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