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 손에는 붓, 다른 손에는 와인 잔

2017-10-19 (목) 한국일보-뉴욕타임스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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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인으로 긴장풀며 그림그리는 재미, 친구끼리 연인끼리 ‘색다른 경험’

▶ ‘물건’ 사는 것보다 ‘경험’ 구매 추세

한 손에는 붓, 다른 손에는 와인 잔

술을 마시며 그림을 그리는 페인팅 클래스가 인기이다. 친구들끼리, 연인끼리 참가해 같이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도 나누고 그림도 그리는 특별한 경험이다. 돈으로 물건보다는 경험을 구매하고 싶어 하는 소비자들의 심리 그리고 와인에 대한 높은 관심이 관련 비즈니스 붐을 일으키고 있다.

한 손에는 붓, 다른 손에는 와인 잔

처음 붓을 들어보는 사람들은 하얀 캔버스 앞에서 주눅이 들기 마련이다. 술 한잔이 이 같은 불안감을 씻어주는 역할을 한다.


■ ‘술과 페인팅’ 이색클래스 전세계적 붐

어느 비 오는 가을 저녁, 아칸소의 벤튼빌 시내의 한 샤핑몰 내 아트 스튜디오로 고객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대부분 여성들인 이들 수강생은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먼저 바로 향한다. 바에서 와인이나 맥주를 한 잔씩 들고 테이블로 가서 페인팅을 시작한다. 요즘 붐을 일으키고 있는 ‘술과 페인팅’ 클래스이다,

스튜디오에서 술을 마시며 그림을 배우는 취미 활동이 인기를 끌고 있다. 소비자들이 물건에 돈을 쓰기보다는 경험에 돈을 쓰고 싶어 하는 추세가 형성되면서 그림과 술을 합친 클래스들이 증가하고 있다. 술을 마시며 그림을 그리는 클래스는 미국뿐 아니라 아부다비, 홍콩, 런던에도 생겨났다.


앞의 벤튼빌 스튜디오 ‘좀 색다른 페인팅(Painting With a Twist)‘은 이같은 스튜디오들 중 가장 잘 나가는 체인으로 꼽힌다. 그외 대표적 체인들로 버틀 & 보테가(Bottle & Bottega), 피노의 팔레트(Pinot’s Palette), 와인과 디자인(Wine and Design) 등이 있다.

큰 체인들은 수백 개 지역에 스튜디오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체인이 아닌 독자적 스튜디오들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일상생활의 긴장을 풀고 편안하게 사람들과 어울리며 예술적 근육도 좀 키워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이런 추세는 한동안 계속될 것 같다”고 ‘페인트 플레이스(Paint Place)’를 운영하는 마시 프리드는 말한다. 2014년 맨해턴의 어퍼 웨스트사이드에 페인트 플레이스를 연 프리드는 지난해 퀸스의 아스토리아에 두 번째 스튜디오를 냈다.

클래스 내용은 모두 비슷하다. 수강생들은 미리 그려진 이미지를 가지고 강사의 지도에 따라 한 단계 한 단계 색칠을 해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페인팅을 하는 중간 중간 좋아하는 술을 골라 마시며(혹은 커피나 물을 선택할 수도 있다) 술도 즐기고 그림도 즐기는 것이다. 그리고는 완성된 작품을 가지고 돌아간다.

수강비는 지역과 수업내용에 따라 35달러에서 65달러 선.

루이지애나, 맨드빌에서 ‘색다른 페인팅’을 창업한 캐시 디노에 의하면 참가자들 대부분은 페인팅을 거의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초보자들이 흰 캔버스를 처음 대하면 주눅이 들기 마련인데 이때 와인을 몇 모금 마시면 그 불안감이 가라앉는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긴장을 풀어주거든요.”

벤튼빌 스튜디오의 주인인 수잔 진(59)은 “낚시 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한다.


“술 좀 마시고, 이야기 많이 하고 그리고는 집으로 뭔가를 가지고 가는 것이지요.”

항상 뭔가 자기 사업을 해보고 싶었던 진은 언니와 함께 그림과 술 클래스를 수강한 후 이거다 싶어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화가가 아닌 그는 지역 화가들을 강사로 고용하고 딸과 함께 스튜디오를 운영한다.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클래스가 있는가 하면 커플 클래스 혹은 ‘여자 친구들 끼리의 밤 나들이’ 클래스들도 있다. 기업들이 단합대회나 기금모금 행사로 클래스를 예약하기도 한다.

‘그림과 술’ 클래스가 인기를 끌며 비즈니스로 자리 잡은 데는 전반적으로 와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 한 배경이 된다. 아울러 소비자들이 ‘단순히 뭔가를 사는 것보다’ 뭔가에 열중하며 자신을 표현하는 경험에 끌리고 있는 것이 또 다른 배경이라고 한 관계자는 설명한다. 경험 제공 비즈니스로는 예를 들면 탑 골프(Top Golf)가 있다. 고객들이 골프 관련 게임을 하고는 다른 방으로 가서 다함께 퍼즐 놀이를 하는 것이다.

이런 비즈니스들이 성장하는 것은 최근 발표된 심리학 연구결과를 반영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사람들이 물건 구매 보다는 경험에 돈을 쓸 때 더 행복해한다는 내용이다. 코넬 대학과 UC 샌프란시스코 연구진이 2014년 심리학 학술지에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뭔가 좋아하는 물건을 사게 되어서 그 순간을 기다릴 때 느끼는 기쁨 보다 어떤 경험을 앞두고 기다릴 때의 기쁨이 더 크다.

술과 그림 비즈니스를 시작하려면 프랜차이즈(Paingting With a Twist) 비용이 2만5,000달러이고 다른 비용들을 모두 합치면 장소에 따라 창업에 우선 8만9,000달러에서 18만8,000달러가 든다. 연간 세금 전 수익은 평균 38만8,000달러 정도.

술과 그림 클래스 중에서도 좀 다른 접근을 시도하는 스튜디오들이 있다. 시카고에 있는 바틀 & 보테가는 개인 이름이 새겨진 와인 글래스 혹은 크리스마스 장식품 공예 클래스들을 제공한다. 결혼 앞둔 신부와 친구들 파티용으로 남성 누드모델 페인팅 클래스도 있다.

애완견이나 고양이에 대한 미국인들의 지극한 사랑을 반영한 ‘애완동물 페인팅’ 클래스도 있다. 참가자들이 사전에 자기 애완동물 사진을 제출하면 강사가 연필 스케치를 준비하고, 클래스에서 수강생들은 색칠을 한다. 이 클래스는 항상 매진이라고 한다.

술과 그림 클래스 수강자들은 다양하다. 외출할 거리가 필요한 노인들도 있고, 특별한 데이트를 원하는 커플들도 있다. 술집에 가지 않고 뭔가 다른 시간을 함께 보내려는 연인들이다. 그리고 직장생활로 인한 스트레스를 다 잊고 편안하고 한갓진 시간을 누려보고 싶어서 참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술에 관한 규정은 지역에 따라 다르다. 참가자들이 각자 술을 가져 오게 허용하는 스튜디오도 있고, 반드시 그 자리에서 사서 마셔야 하는 곳도 있다. 클래스는 보통 두 시간이니 과음으로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국일보-뉴욕타임스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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