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제재와 응징의 역설

2017-10-18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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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탐욕은 절대 기회를 놓치는 법이 없다. 허리케인이 강타한 텍사스와 플로리다 주민들을 괴롭힌 건 폭우와 강풍만이 아니었다. 재해로 생필품 공급이 끊기고 재해지역을 벗어나려는 이재민 행렬이 이어지면서 이런 절박함을 노린 바가지요금이 극성을 부린 것이다.

플로리다의 경우 주 검찰에 신고 된 바가지요금 고발만도 수만 건을 넘었다. 평소 547달러였던 마이애미에서 피닉스까지 편도 항공요금이 3,258달러로 폭등했다는 신고도 있었다. 생수 한 케이스가 소매점에서 42.96달러에 팔리고 있다는 고발 사진은 수많은 이들을 분노케 했다. 이재민들의 고통을 탐욕을 채우는 기회로 이용한 비뚤어진 상술과 악덕 행태를 단속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진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뉴욕타임스는 재해지역에서 극성을 부리고 있는 바가지요금 실태를 보도하면서 재미있는 분석을 곁들였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바가지요금 단속이 오히려 소비자들에게 불이익을 끼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바가지요금 단속은 재해에 대비한 소비자들이 생필품 비축 동기를 약화시키고, 동시에 위험지역에 대한 공급업자들의 물품공급 인센티브를 왜곡시킬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에게 더 큰 피해를 안긴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바가지요금의 윤리학’이란 논문을 쓴 마이클 기버슨은 “법이 도와주고자 한 그 사람들에게 오히려 법이 해를 끼치는, 의도치 않은 결과의 전형적 사례”라고 풀이했다. 바가지요금 단속과 관련한 공급학파 경제학자들 주장의 타당성은 차치하더라도, 도와주려고 한 행동이 오히려 그 대상을 한층 더 어렵게 만드는 역설의 실제 사례들을 찾아보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몇 년 전 방글라데시 봉제공장에서 화재가 발생, 100여명이 목숨을 잃는 끔직한 참사가 발생했다. 열악하다 못해 처참한 수준의 작업환경이 조명되고 악덕 업주에 대한 비난이 고조되면서 이런 공장들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을 사지 말자는 불매운동이 확산됐다.

노동자들에 대해 비인간적 처우를 하는 공장 제품을 사지 말자는 캠페인은 아주 고매한 도덕적 동기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정작 그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건 업주가 아니다. 그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다. 불매운동으로 공장이 문을 닫으면 이들의 일자리도 날아가 버린다. 악덕업주 응징이라는 의도가 불쌍한 노동자들의 실직이라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열악한 환경의 공장이 그나마 가장 좋은 일자리이다. 절대빈곤 퇴치 운동을 벌이고 있는 컬럼비아대 제프리 삭스 교수의 “내가 걱정하는 건 노동착취 공장들이 너무 많은 게 아니라 너무 적다는 것”이라는 발언은 이런 현실에 대한 냉정한 인식에서 나온 것이다.

인간사회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 덧셈과 뺄셈 하듯 단순명료한 규칙에 의해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는 악과 불의를 보면 즉각 분노하고 응징과 제재를 목소리 높여 외치지만 그런 조치들이 예상치 못한 연쇄반응을 거치면서 의도치 않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제재와 응징의 역설은 국제사회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잔학한 유고 밀로셰비치 정권 응징을 명분으로 한 나토의 코소보 공습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죄 없는 민간인들이었다. 이라크 전쟁은 또 어떤가. 독재자로부터 죄 없는 국민들을 구해내겠다는 명분으로 시작한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이라크 국민들은 이전보다 더 안전해지고 자유로워졌는가.

핵 도발을 지속하고 있는 깡패 국가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과 제제가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의도한 목표에서 벗어난 예기치 못한 결과가 발생하는 걸 막으려면 제재에 신중함과 정교함이 뒤따라야 한다. 잔인한 독재자를 옥죄기 위한 강도 높은 제재가 소기의 목표물은 비낀 채 애꿎은 주민들만 고통스럽게 만든다면 성공한 응징이라 할 수 없다. 대북제제와는 별개로 투명한 국제기구를 통한 인도적 지원의 끈만은 놓지 말아야 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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