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인들의 술상’

2017-10-17 (화) 김 완(시인,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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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의 술상’

김경애,‘Garden #1’

시인들의 술상이 너무 고급이다
지나치게 사치스러운 안주에서는
기름지고 뚱뚱한 시가 나오기 마련
한 그릇 국밥에 맑은 영혼을 말아
깍두기 한 접시 된장에 찍어 먹는
양파, 매운 고추면 만족해야 하리
피와 땀과 눈물에 경배하며
세상에 길들여지지 않은 정신으로
푸른 하늘의 자유를 노래해야 하리
이 세상의 온갖 상처를 안주 삼아
탁주 한 병 소주 한 병이면 족해야 하리
지상의 낮고 어두운 곳까지 내려가
아물지 않는 상처에서 희망의 꽃
다시 피울 그날까지 기다려야 하리
선악의 경계가 무너진 시대일수록
허기가 정신을 맑게 한다는 말
온몸에, 뜨거운 가슴에 새겨야 하리

김 완(시인, 의사) '시인들의 술상'
시인이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은 영혼이 자유롭고 순수한 때문이다. 마지막 시인이 눈 감을 때 세상은 끝난다는 말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마지막까지 세상의 깊은 곳을 뜬 눈으로 지켜보는 까닭이다. 그런데 호사스레 낭비를 누리는 이가 심금을 울리는 시를 쓸 수 있을까? 비록 재주가 출중하여 그런 시를 썼다손, 사랑에 존경까지 받을 수 있을까. 넉넉지 않음에서 빛나고, 고독함에서 풍요로워지는 이가 시인이다. 시인이 진실로 낭비해도 좋은 것은 그의 아름다운 영혼뿐이리라. 임혜신<시인>

<김 완(시인,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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