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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극보다 더 무서운 것

2017-10-11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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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이나 사실을 인식하는 데 있어 인간은 그리 합리적이거나 이성적이지 않다. 주변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감정적 반응이 균형을 잃으면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냉철히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현실인식을 방해하는 가장 흔한 감정문제는 불합리한 공포이다.

대중들이 위험을 인식하는 패턴에 관해 획기적 발견을 한 사람은 스타라는 이름의 미국의 엔지니어였다. 지난 1969년 이 엔지니어는 원자력으로 인해 사망할 확률이 스키를 타다 죽을 확률보다 훨씬 낮은데도 사람들은 원자력 사고에 대해 더 큰 공포를 갖고 있음을 발견했다. 이런 사례는 무수히 많다.

매년 미국에서 각종 총기범죄와 총기사고로 숨지는 사람은 1만1,000명에 달하고 있다. 반면 9.11 테러 이후 지하드 테러범들에 의해 희생된 미국인은 95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1년에 평균 6명꼴이다. 총기범죄 희생자의 2,000분의1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미국인들은 여전히 총기범죄보다 테러에 훨씬 강한 공포반응을 보인다.


그런데 정확한 현실인식과 관련해 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총기참극이 반복해 일어나면서 점차 미국인들 의식 속에 감정적 내성이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 역사상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라스베가스 총기참사로 미국인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충격의 감정은 점차 옅어지고 참극은 서서히 잊히기 시작할 것이다. 그동안 모든 총기참극들은 이런 패턴을 밟아왔다. 하도 자주 이런 뉴스들을 접하다 보니 이제는 희생자가 몇 명인 정도는 그저 그런 사건으로 담담히 받아들일 정도가 됐다.

같은 일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다 보면 점점 반응이 무뎌지게 된다. 좋은 일도 그렇고 나쁜 일 또한 그렇다. 전문가들이 ‘습관화’ 혹은 ‘둔감화’(desensitization)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쾌락의 추구에 끝이 없는 것도 이런 작용에서 비롯되고, 같은 원리로 고통 또한 지속되다 보면 조금씩 무감각해진다. 웬만한 총기사건에는 고작 어깨 한 번 으쓱하는 게 전부가 돼 버린 것은 이런 내성 때문이다.

둔감화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오하이오 주립대 브래드 부시맨 교수가 학생 3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험을 통해 규명한 바 있다. 부시맨 교수는 학생들을 둘로 나눠 폭력적 비디오 게임과 비폭력적 비디오 게임을 하도록 한 후, 싸움이 일어나 한 사람이 다치고 그 사람이 고통 속에 내는 신음 소리를 학생들이 들을 수 있도록 상황을 연출했다.

그랬더니 폭력 게임을 하던 학생들과 비폭력 게임을 한 학생들 간에 현격한 반응 차이를 보였다. 피해자를 도우려 가는 데 걸린 시간이 비폭력 게임 학생들은 평균 16초였던 반면 폭력 게임 학생들은 무려 73초가 걸렸다. 게다가 경찰 신고율도 훨씬 낮았고 싸움 자체를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실험용기 안에 개구리를 넣고 서서히 물의 끓는 온도를 올리면 개구리는 탈출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결국 죽는다. 한 국가나 사회, 그리고 기업의 쇠락은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 서서히 무너진다. 나날이 흉포화 되는 총기범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의 미국사회는 실험용기 안의 개구리를 꼭 닮아 있다.

그런데 이런 감각의 상실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 ‘체념’이다. “점점 더 나쁜 일이 발생하고 있는데도 아무도 그걸 고치려 들지 않는다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나아질 희망이 없는 것으로 체념하게 되고 그러면서 그 나쁜 일은 보다 더 일상화 된다”고 부시맨 교수는 결론 내렸다. 관련 연구를 했던 학자적 양심에 따라 부시맨 교수는 연방의원들에게 총기규제에 표를 던져달라고 호소하는 편지를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다.

엄청난 비극이 점차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건 정말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참사의 충격이 연기처럼 소멸되기 전에 미국인들과 정치권은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함으로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 만약 이번 기회마저 그냥 흘려보내게 된다면 부시맨 교수의 우려대로 그 자리엔 절망과 체념, 그리고 더 큰 참극만이 남게 될 것이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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