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희망고문 16년, 이제 끝내야

2017-10-04 (수) 김상목 정책사회팀장 부국장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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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치 16년이다. 고문도 이런 고문이 없다. 무려 16년간 희망고문을 당하고 있는 그들의 ‘드림’은 또 다시 ‘헛꿈’이 되고 말 것인가? 이제 6개월이 채 남지 않았다. DACA를 폐지한 트럼프가 내년 3월 5일을 최종시한으로 제시하면서 공을 연방의회로 떠넘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기가 새로운 기회일 수도 있다. DACA 폐지로 80만 드리머들이 자칫 추방될 처지에 놓이게 되고서야 드림법안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과 공화당 일부 의원들이 초당적인 드림법안을 상원에 발의한데 이어 공화당도 유사한 내용의 ‘석시드 법안’을 내놓는 등 드리머 구제안 논의가 점차 속도를 내고 있다. 드리머에 동정적인 트럼프 대통령도 국경보안 강화안을 협상카드로 제시하며 의회에 구제안 마련을 촉구하고 있어 민주, 공화, 트럼프 백악관 3자가 머리를 맞대는 협상도 구체화될 가능성이 높다. DACA 폐지가 드림법안 협상을 재촉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셈이다. 여론도 대체로 우호적이다. 민주당 뿐 아니라 상당수의 공화당 지지자들까지 미국인 대다수가 드리머 구제를 지지하고 있어 드림법안은 16년만에 의회를 통과할 수 있는 호기를 맞고 있다.


그렇다고 마냥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간 의회 통과 문턱에서 좌절을 거듭한 지난 16년간의 전철이 다시 반복될 수도 있다. 드림법안이 첫 발의됐던 것은 지난 2001년. 당시 여고생이던 한인 드리머 테레사 리양 가족의 사연이 알려진 것이 민주당 딕 더빈 상원의원이 법안을 만들었지만 그 해 터진 911사태로 논의가 중단되면서 결국 좌절된 것을 시작으로 지난 16년간 드림법안은 수차례 발의와 무산을 반복했다. 2007년엔 하원 본회의를 통과해 희망이 보이는 듯 했지만 민주당 의원 8명이 이탈하면서 상원 통과가 좌절됐다. 2013년에도 반대 상황이 연출됐다. 드림법안이 포함된 포괄이민개혁법안이 상원을 통과하고서도 하원 표결을 못해 결국 법안이 무산된 것이다. 당시 다수당인 공화당 의원들의 과반수가 반대한다는 이유를 들어 공화당은 법안의 본회의 상정을 가로막았다. 오바마의 DACA 행정명령은 이같은 상황 속에서도 나온 궁여지책이었다.
16년 만에 찾아온 이번 기회를 다시 놓치지 않으려면 먼저, 드리머 구제에 적극적인 민주당이 변화할 필요가 있다. ‘불체자의 시민권 취득 허용’을 고집하다 이민개혁 전체를 무산시킨 2013년의 과오를 반복해선 안된다는 말이다. 한 발짝 뒤로 물러서 공화당 온건파가 수용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절충안을 내놓는 것이 민주당의 급선무다. 선명성을 고집하다 정작 드리머 구제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협상에는 상대가 있고, 양보 없이 타결되는 협상은 없다.

공화당의 태도변화는 더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특단의 조치가 없다면 추방될 수밖에 없는 80만 드리머들이 현재 미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실부터 인정하는 실용적 접근방식이 필요하다. 또, 법조문 어디에도 없는 ‘다수당의 다수 찬성’ 관례를 내세워 본회의 표결을 가로막는 막가파식 횡포도 그만두자. 이제 공화당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협상 타결여부에 80만 드리머들의 미래가 달려 있다.

<김상목 정책사회팀장 부국장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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