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총기규제

2017-10-04 (수) 여주영/뉴욕지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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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소유는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너무 허술한 총기허가로 인해서 늘 대형 참사가 일어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히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해 엄청난 희생자가 생기곤 하지만 총기사용을 미국에서 완전히 막기란 거의 불가능한 상태다. 총은 미국독립을 쟁취한 민병대의 자랑스러운 상징이고 개인의 총기소유 권리 자체가 아예 미국헌법에 명문화되어 있다.

아무리 총기참사가 일어나도 현재로선 총기소유를 규제할 방법이 딱히 없다. 총기소유를 옹호하며 연방의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미 전국총기협회(NRA)의 로비력을 막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총기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규제강화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다 이내 사그라지면 또다시 총기사건이 잇따르고 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미국사회의 실정이다. 그러다 결국 일어날 것이 이번에 또 일어나고 말았다.

지난 1일 미국 최대의 관광도시 네바다주 라스베가스에서 역대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나 59명이나 죽고 500여명이 부상당하는 대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이날 밤 10시경 라스베가스의 한 야외 콘서트장을 향해 건너편 고층호텔에서 한 남성이 자동화기 소총으로 10여 분 간 무차별 난사, 콘서트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면서 피로 물들었다. 2만여 명의 나머지 청중들도 총탄세례에 놀라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면서 콘서트장은 졸지에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악몽의 현장으로 바뀌었다.


이 ‘외로운 늑대’가 일으킨 끔찍한 사건은 수많은 관광객들로 하루도 쉴 새 없이 밤낮으로 북적이던 도시 라스베가스를 공포의 도시, 유령의 도시로 만들었다. 사건 현장은 지금 언제 그런 흥청거림이 있었는지 모르게 침묵을 지키고 있다. 전미국은 하루아침에 받은 충격과 슬픔 속에 오열하며 아무 죄 없이 죽어간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며 촛불을 환히 밝히고 있다.

부상자를 위한 헌혈과 자원봉사, 많은 물품들의 기부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주 당국은 관리가 어려울 정도라고 하지만 이미 엄청난 희생이 따르고 난 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곧바로 성명을 통해 “엄청난 희생을 부른 이번 사건은 악 그 자체이다”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이런 뻔한 논평은 그동안 너무 지겨울 정도로 들어왔다. 이미 2012년 커네티컷 뉴타운 샌디훅 초등학교에서 어린아이를 포함 28명이 죽은 총기난사 사건, 이듬해 워싱턴DC 해군기지에서 13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 또 2015년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흑인교회에서 9명의 교인이 무참히 죽은 총기난사 사건 때도 들었다. 모두가 사회에서 소외된 은둔형 외톨이들이 저지른 범죄였다. 이때마다 미국사회는 충격과 슬픔에 빠져 어떻게든 총기규제책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떠들썩하다 다시 잠잠해지곤 하였다.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는 이번 사건의 범인이 얼마 전 이슬람으로 개종했다며 자신들이 배후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경찰은 이번 사건이 ‘외로운 늑대의 단독범행’이라고 했지만 이 개연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IS의 주장대로는 아니라 해도 홀로 범인이 동영상 등을 통해 이들의 행적을 추종하려고 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총기소지가 자유로운 미국에서 IS같은 극단적 생각과 증오에 물드는 외로운 늑대들의 범죄보다 더 끔찍한 위험은 없다. 연방수사국이 아무리 철저히 막는다고 해도 이들 개개인의 행적이나 소행까지 전부 조사하고 막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들은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대형참사의 뇌관을 지니고 있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들이다.

이제 시민들은 군중이 많이 모이는 불꽃놀이, 타임스퀘어 새해맞이, 마라톤 대회나 콘서트장, 영화관, 백화점 같은 곳에 마음 놓고 갈수 없다며 두려움에 떨고 있다. 더불어 또 다시 총기규제에 대한 목소리가 재점화되고 있다. 이번에야 말로 총기규제에 대한 강화책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무고한 사람들이 총기로 인해 무참히 희생돼야 하는가. 이제는 정말 전 국민이 총기규제를 위해 하나로 뭉칠 때다.

<여주영/뉴욕지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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