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추석

2017-10-03 (화) 이성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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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 하도 푸르러

선돌바위 앞에 앉아 밤새도록 빨래나 했으면 좋겠다

흰 옥양목 쳐대 빨고 나면 누런 삼베 헹구어 빨고


가슴에 물 한번 끼얹고

하염없는 자유형으로 지하 고성소까지 왕복했으면 좋겠다

갔다 와도 또 가고 싶으면 다시 갔다 오지

여태 살았지만

언제 살았다는 느낌 한번 들었던가

이성복(1952- ) ‘추석’

추석

명절이 시작 되어 고향으로 향하는 발걸음들이 바쁘겠다. 그립던 가족들이 만나 기쁨의 꽃을 피우는 우리 명절 추석이다. 하지만 모두 즐거운 것은 아니다. 명절은 힘든 사람들을 더욱 힘들게 하기도 한다. 열흘 연휴라지만 일용직 노동자들은 괴롭다. 고향에 갈 수 없는 이들, 부모님을 찾아 뵐 수도 없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우울해질 수 있다. 휘엉청 달 아래, 바위에 앉아 밤새도록 빨래를 하거나, 물속을 맘대로 유영하고 싶다는 소망이 서글프게 다가온다. 상실을 살아가는 낮은 곳의 모든 이들에게도 부디 풍요한 한가위가 찾아오길 빈다. 임혜신<시인>

<이성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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