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국가권력의 천박함

2017-09-27 (수) 조윤성 논설위원
작게 크게
이명박 정권 아래서 저질러진 반민주적 전횡과 적폐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여론조작을 위해 국가 최고정보기관을 동원해 저급한 내용의 댓글들을 생산해 내고 심지어 블랙리스트에 오른 남녀 연예인의 알몸 합성사진까지 만들어 유포시키는 천박한 행위까지 서슴지 않았다. 도무지 21세기 민주국가의 국가기관이 저지른 짓이라고는 믿기 힘든 낯 뜨거운 행태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데도 반성은커녕 정치보복이라 우기며 막말과 교묘한 논리로 ‘물 타기’를 하려 드니 어이가 없다.

본래부터 권력은 속성상 고상한 것이 되기 힘들다. 그래서 19세기 영국의 정치철학자 제임스 브라이스는 이런 권력의 속성을 꿰뚫어 보고 “위대한 사람은 대통령이 되지 못한다”고 했던 것이다. 지나치게 깨끗하고 도덕적인 인물은 때때로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까지 해야 하는 정치판의 진흙탕 싸움에 잘 어울리지 않을 뿐 아니라 살아남기도 힘들다. 그래서 대개의 권력은 도덕성과는 아주 거리가 먼 얼굴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런 기준으로 보더라도 이명박 정권의 부도덕함은 도가 지나쳤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민주주의의 기초를 훼손하고 기본권을 침해했다. 이런 반민주적인 범죄를 저지르고도 여전히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정치권력의 주인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는 인물 자체가 아니라 시대의 정서다. 퓰리처상을 받은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는 이것을 학술적으로 정리했다. 그는 권력이 진보와 보수 사이에서 시계추처럼 움직인다며 ‘국가의 분위기‘(national mood)가 ‘공적인 목적’(public purpose)을 선호할 때 진보정권이 들어서고 ‘사적 이익’(private interest)을 열망하는 정서가 지배적이면 경쟁과 자유시장을 앞세우는 보수정권이 권력을 잡는다고 봤다.

슐레진저의 분석은 어떻게 이명박 정권이 등장할 수 있었는지를 설득력 있게 설명해준다. 김대중과 노무현의 10년을 거치면서, 특히 노무현의 정치적 이상론에 국민들이 식상해 할 즈음 이명박은 온 나라를 광풍처럼 휩쓸던 국민들의 사적인 욕망을 자극해(그가 슬로건으로 내세웠던 747 경제공약을 떠올려 보라) 대통령 자리에 앉았다. 절묘한 타이밍으로 분수와 능력에 맞지 않는 권력을 손에 쥔 것이다.

국민들의 욕구가 공적인 것이든 사적인 것이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권력의 사용방식은 어떤 경우에도 공적이어야 한다. 민주국가라면 진보든 보수든 이 원칙에 예외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국민들의 사적 욕망을 등에 업고 탄생한 이명박 정권은 자신들의 권력조차 사적인 것으로 착각하고 철저히 그런 방식으로 사용하려 들었다.

국정원 스캔들만이 아니다. 공영방송 등 미디어를 사유화하기 위해 저지른 행패는 드러난 것만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수십조 원의 나랏돈을 4대강이니 자원외교니 하면서 자기 주머닛돈 쓰듯 펑펑 써댔다. 그 바탕에는 권력을 잡았으니 모든 걸 자기들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시대착오적 무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 듣도 보도 못한 ‘국격’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면서 대단히 격조 있는 양 행세한 이명박 정권의 실상은 천박함이었던 것이다.

26일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퇴임 후에도 군 시설인 기무사 테니스장을 무시로 사용해 왔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는 서울시장 재직 시절에도 이른바 ‘황제 테니스’ 논란에 휩싸였던 사람이다. 비록 작은 사안일지는 몰라도 ‘몰상식’ ‘몰이해’ ‘몰염치’로 요약되는, 공사 구분을 전혀 할 줄 모르는 그의 의식 수준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적폐를 드러내고 도려내는 일에는 한 치의 주저함도 있어서는 안 된다. 다시는 민주주의의 근간과 국기를 흔드는 추악한 정치범죄가 반복되는 일이 없도록 확실하게 밝혀내고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 그래서 미래 정권들에게 권력의 올바른 사용 지침을 담은 매뉴얼을 물려주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문재인 정권 또한 이 매뉴얼에 어긋날 경우 다음 권력에 의해 처벌받을 각오를 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제는 정말 국가권력의 천박함에 종지부를 찍을 때가 됐다.

<조윤성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