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도로 위의 ‘사회적 압력’

2017-09-20 (수) 조윤성 논설위원
작게 크게
최근 한인타운에서 경찰이 순찰차와 모터사이클은 물론 자전거 경관들까지 동원해 집중적인 교통위반 단속을 벌이고 있다.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특히 우회전과 좌회전 관련 교통법규를 무시하고 핸들을 꺾었다가 교통위반 티켓을 끊는 운전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관련 법규는 간단하다. 우회전의 경우 건너편 쪽에서 보행자가 일단 차도로 발을 내디뎠다면 그 사람이 길을 완전히 다 건널 때까지 기다렸다 돌아야 한다. 또 운전자 쪽에서 건너기 시작했다면 도로의 3분의 2 지점에 이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이 규정을 지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바쁜 시간에 보행자가 다 건너길 기다리다 보면 1초가 1분처럼 느껴진다. 규정을 지키려다 신호등이 바뀌는 바람에 우회전 할 타임을 놓치기도 일쑤다.

그런데 이보다 운전자들의 마음을 더 다급하게 만드는 것은 뒤차들의 존재다. 법규를 준수하려다 보면 이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왜 빨리 돌지 않느냐고 경적을 울려대는 차들도 있다. 이런 상황이 주는 스트레스는 장난이 아니다. 그래서 웬만하다 싶으면 위반인줄 알면서도 그냥 돌게 된다.


운전을 하면서 다른 차들로 인해 압박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는 너무 많다. 미국 교통안전기관 통계에 따르면 교통사고 발생 상황들 가운데 세 번째로 많은 것은 비보호 좌회전 차선에서 기다리던 중 뒤에 있던 차가 갑자기 경적을 울리는 바람에 얼떨결에 급히 돌다 발생하는 사고들이다. 뒤차가 앞차 운전자에게 압력으로 작용한 것이다.

타인이 우리의 행동과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물론 운전에 국한되지 않는다. 거의 모든 상황들 속에서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다른 이들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는다. 이른바 ‘사회적 압력’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사회심리학자 솔로몬 애시의 실험은 ‘사회적 압력’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입증한 고전적 연구로 꼽힌다. 애시는 누가 봐도 정답이 너무 명확한 문제를 내고 사전에 공모한 실험참가자들에게 오답을 하도록 했다.

그러자 아무 것도 모른 채 실험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일순 당황하다가 오답을 따라가는 경향을 보였다. 오답을 내는 사전공모자들이 더 많을수록 오답을 따라가는 비율 또한 더 많았다. 이 실험은 17개 나라에서 똑같이 실시됐는데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나라일수록 오답 동조비율이 더 높았다. 애시의 것을 변형한 다른 실험들에서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자기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다는 것을 확인할 때 안도감을 느낀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고 불안한 기분이 든다. 내 생각을 고집하면 거부당하고 배척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바로 이런 두려움이 압력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정답이 명백한 문제임에도 다수의 오답을 따라가게 되는 것이다.

‘사회적 압력’은 왜 도덕적으로 선량한 사람들이 비윤리적 행위에 동조하고 반인륜적 범죄에 가담하게 되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 프랑스 사회심리학자 로랑 베그가 “다수는 깡패다”라고 말했던 것은 그만큼 다수의 압력이 폭력적이고 무섭다는 걸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사회적 압력은 통상적으로 자존감이 취약한 사람들에게 더 강하게 작용한다. 그러니 이런 압력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다수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라는 확고한 소신과 줏대를 가져야 한다.

압박감에 의한 도로 위 교통위반과, 사회적 압력에 의한 비윤리적 범죄는 초래하는 결과의 심각성에서는 큰 차이가 있지만 본질적으로 같은 메커니즘에서 비롯된다. 그러니 무수한 차들이 움직이는 도로 위는 사회적 압력에 쉬 무릎 꿇지 않는 내공을 기를 수 있는 최상의 훈련장일지도 모른다. 나의 교통위반이 경적을 울린 뒤차 책임이 아니 듯, 사회적 압력에 의해 저지른 비윤리적 행위의 책임 또한 전적으로 개인의 몫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조윤성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