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함에 관하여’
2017-09-12 (화) 12:00:00
Charles Simic

정동현,‘Companion’
나는 비 내리는
일요일의 아이,
시간이
젖은 창틀을
부상당한 파리처럼 기어가는 것을
바라보거나
나무 저 높은 꼭대기
떨고 있는 가지들이
멈추기를 기다리고 있었지,
발밑에서 고양이처럼
실뭉치를 굴리며
할머니가 뜨개질을 하는 동안,
그때 나는 알고 있었지
집안의 모든 시계가 멈추어 버렸던
그날이,영원할 것이란 것을
Charles Simic ‘지루함에 관하여’
임혜신 옮김
특별한 날도 아니었고 특별한 일도 없었던 순간, 모든 것이 정지한 듯 다만 고요하고 지루했던 비의 일요일을 시인이 기억하고 있다. 뜨개질 하는 할머니, 추적이는 비, 바람, 그리고 지루함. 시계가 멈추어진 듯 무료한 그 정경을 왜 그는 이처럼 또렷하게 기억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집요했던 무료함 그 자체 때문이다. 시인은 한 순간의 지루함이 아니라, 지루함이라는 삶의 끈질긴 본질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비 내리던 어린 시절의 불안한 지루함처럼, 피할 수 없는 생존의 영원한 무료함에 대하여 말이다.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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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es Simic>